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은광 May 31. 2024

글 만드는 아침 (2)

일종의 방법론

써놓고 보니 꼭 하루 종일 일만 하는 것 같지만, 당연히도 그럴 리가 없다. 대체로는 누워서 논다. 눕는 것이 핵심이다. 등이 땅에서 떨어지는 시점에서 이미 필요조건도 떨어지는 것이다.

마음먹고 써 내려가면, 25매 집필에 평균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 퇴고 포함. 대외적으로는 이렇게만 말하고 입을 다문다. 그럼 모두가 경탄과 동경이 뒤섞인 눈빛으로 나를 본다. 사실이라면 무지하게 빠른 속도인 것이다. 물론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대전제의 마법이다.

‘마음먹고 쓰면’ 부분이 대전제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있을까 말까 한, 거의 ‘사건’에 가까운 일이다. 보통은 쓰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러므로 25매를 두 시간에 완성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앞의 진술은 사실이되 진실은 아니다. 이것은 “난 거짓말한 적이 없!”다고 항변할 때 써먹을 수 있는 수사법이다. 당하는 사람은 속이 터진다. 형식논리적으로 분명히 참이거든.

그럼 대체로는 무엇을 하는가? 누워서 폰을 들고 있는 자들이 하는 짓이라는 게 뻔하다. 게임이거나 쇼핑이거나 쓸데없는 콘텐츠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는 게임을 하지 않으니까 나머지 둘을 한다. 심플한 결론이다. 사람 사는 꼴이란 게 결국은 다 거기서 거기다.

‘쓸데없는 콘텐츠’에는 내가 만드는 것도 포함된다. 지금 주절대고 있는 이 글이 바로 정확히 그런 것에 해당한다. 이런 것은 마음먹고 쓴다. 이상하게 볼 것 없다. 시험 전날 논문 한쪽을 읽으려면 한 시간이 걸리지만, 같은 분량의 카톡 메시지를 찍어내는 데는 오 분이면 충분한 것과 같은 원리다.

지금 이 글이 5매째에 접어들고 있는데 5분을 조금 넘겼네. 일을 이렇게 할 수 있었다면 대학자가 되었거나 대부호가 되었거나, 아무튼 대형의 무언가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지금 내게 대형인 것은 몸집일 뿐. 아이고 주님··· 참, 나 불교도지ㅠ



Posted on Instagram at 1 Sep 23
Cover Image from Unsplash by Zhang Kenny


매거진의 이전글 글 만드는 아침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