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판단을 뒤로 하고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행위이자, 내가 죽는 행위이기도 하다.
편견과 선입견, 옳음으로 가득한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는 것을 뒤로 지연시키는 행위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렵다.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의견을 묻는 것이 어렵고,
의견을 묻고 다 존중해주면 결론은 언제내는가 하는 걱정 때문이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누군가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듣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1분 이내에서 3분 내외로 나의 경험에는 잠시의 시간을 내어주면 되었다.
성급하게 판단해서, 우리가 더 좋은 아이디어를 듣고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거나,
그도 그럴만한 이유로 이야기한 것을 성급하게 잘라버리고 참여를 가로막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존중의 기초 위에,
우리는 더 나은 결정을 만들어갈 수 있다.
존중은 의견을 유효화하는 것이며,
결정은 그중에서도 가장 바람직하다고 하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다.
결정이 우리에게는 있기 때문에 절차를 보지 못하는 참여자에게 안심을 시켜주고,
논의가 결정에 다다를 수 있도록 절차를 잘 설계하고 진행해나가면 된다.
존중 없는 결정은, 무너지기 쉬운 토대 위에 세워진 것과 같으므로
우리는 존중을 통한 common ground를 잘 만들어가도록 도와야 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이 너무 어렵다고 하는 새내기 퍼실리테이터들을 만나며,
이 질문을 통해 한편으로 얼마나 자유를 느낄 수 있는지, 그 맛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내가 죽음으로, 그룹이 살고, 결론적으로 나도 살아난다.
그래서 내가 이 험악한 일들을 만나면서도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