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도 원리를 깨우치게
디자이너가 가장 난감해 하는 요청사항 중에
“큐트섹시”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업무를 할 때에는
“빠르고 정확하게”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하나를 제대로 취하려고 하면 한 쪽은 상반되어 보이는 경쟁가치이기 때문이 그러하다.
그래서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둘 중 하나만 실현하면 쓸만한 것(usable)하게 활용할 수 있나? 그렇지는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1. 완벽하게 둘다가 아니라, 어느정도의 둘다를 취한다
내가 배운 지식과 경험을, 사내 퍼실리테이터에게 전수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우선 내가 경험한 암묵지를 형식지화해야 하고,
이 조직의 경우(모든 워크샵이 그러하지만) 복잡계가 매우 높기 때문에 현장의 다단한 상황들을 다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알려준다.
그러나, 완벽하게 전수하겠다는 나의 의지가 참여자들에게는 버거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리 없는 실용이 없고, 실용없는 원리가 없지만
회고할 때 보니, 다 알려드려도, 여기에서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일부에 해당하는구나를 다시 깨닫는다.
그래서 완벽한 전수보다는,
참여자로부터, 그들의 상황에서부터 이 두가지의 조화를 이룰 적정한 선을 찾아야 함을 깨닫는다.
2. 양 속의 목자로
새벽 이동하면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했다.
무리 밖에서 양을 치는 사람이 아니라, 양 무리 안에서 양 속의 목자가 되어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였는데,
막상 해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는 사람들을 만나니, 또 다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한 나를 반성해본다.
눈높이 교육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구나.
내가 경험한 산전수전의 그 언덕, 이제는 높아진 나의 신발을 벗고
이들의 고민을 함께 듣고, 이들의 입장에서부터 풀어갈 수 있는 것을 한 걸음정도 더 내딛도록 도와주어야겠다.
나의 신을 벗고, 양무리의 목자가 되어.
3. 배우는 과정이 즐겁게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것, 나의 진보가 있다는 것은 무척 가슴떨리고 즐거운 일이다.
조직개발을, 퍼실리테이션을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이 일의 의미와 즐거움을 마음껏 느끼는 것이다.
어려운 지점을 만나면 함께 고민하여 풀어보고, 그 진전을 함께 맛보는 것.
참여자들의 무게를 내가 똑같이 느끼고 있다보니, 이 점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내 퍼실리테이터들에게,
원리의 의미와 실용의 재미를,
어렵지만 가치롭게 경험하고 실행할 용기를 가져볼 수 있도록
오늘도 돌아가서 교안을 다듬어봐야겠다. (아 쉬고 싶은 마음 반, 다듬어야지 하는 마음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