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는 기술 없이도 그리는 재미를 아는 사람 / 식물 그리기
길을 걷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어느새 신록의 아름다움이 다가오고
보도블럭 틈 사이로 핀 민들레가 눈에 띈다.
하나하나 이름은 모르지만
길가 모퉁이 작게 피어오른 형형색색의 들꽃도 보인다.
봄이 되나 싶었는데 어느새 여름으로 다가가고 있다.
바깥의 여름이 푸르러질무렵 집안 작은 공간 안에도 어느새 여름이 찾아온다.
이사를 결심하고 가장 먼저 고려했던 것은
크고 작은 식물들을 모아서 우리만의 정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작은 평수에 이런저런 예산을 고려하려니 만족할만한 양은 아니었지만
하나둘 사서 모으다 보니 제법 근사한 문 안의 숲이 되었다.
사실 나는 식물을 잘 모른다.
풀과 꽃, 나무를 좋아하고 들과 숲을 거니는 걸 즐거워하는 덕분에
초록이들이 조금 더 친숙할 뿐 이름을 모조리 알고 있거나
어떤 환경에서 잘 자라는지 특성은 무엇인지를 꿰고 있지 못하다.
그저 남들이 다 아는 몇몇 식물의 이름 정도를 말할 수 있는 정도.
J는 그에 비하면 전문가다.
식물을 고르는 안목도 좋고 다양한 식물을 고르면서 어울림을 고려할 줄도 안다.
분갈이도 할 줄 알고 흙과 물을 쓸 줄도 안다.
나는 그저 곁에서 이거이거는 꼭 있으면 좋겠다고 말할 뿐
전체 식물은 J가 골랐다.
하나하나 토분에 옮겨 심고 물을 주어 서로 어울리게 자리를 잡아주면서
J가 "우리 애기들 잘 키워보자." 했다.
애정이 듬뿍 담긴 표현이라서도 그렇지만 전혀 어색함이 없는 말이었다.
어차피 물을 주고, 상태를 관리하는 건 J의 몫이기에 나는 그저 바라보며 즐길 준비만 하고서
"응, 그래" 하고 단숨에 대답을 했다.
그렇게 우리만의 숲이 완성되었다.
완성이라고 하기에 아직 더 들여놓고 싶은 애기(!)들이 많지만
일단은 이정도면 충분하다.
만일 이 초록 생명체들이 공간을 채워주지 않았다면
그저그런, 삭막한 원룸에 불과했을텐데
어여쁜 존재들이 자리를 차지하니 공간에 생기가 감돈다.
그 안에 책꽂이를 함께 두고, 원형 테이블도 두었다.
J가 언제고 내가 앉아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배려한 공간이다.
정원이 완성된 기념으로 그림한장을 그리겠다고 나무이젤을 펼쳤다.
테이블이 좀 더 크면 좋았으련만 색연필을 다 펼치려니 살짝 비좁았지만 그래도 좋다.
이번에도 역시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구상하기도 전에 색연필을 손에 쥐었다.
눈앞에 있는 작은 화분부터 하나하나 그리며 도화지를 채워나갔다.
J가 식물 하나하나로 숲을 채워가듯이....
그림그리는 기술을 제대로 배워본적 없는 사람이라
원근법이라든지, 색을 쓰는 법이라든지 제대로 알지 못해서
막상 그리다 보면 모자란 티가 나지만
그리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이유 하나로
용감하게 그림을 그려나간다.
식물 자체의 고유색을 잘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저 마음가는대로 색을 담아내보는 것이다.
그렇게 그림 하나가 완성되는 동안
내 마음에도 숲이 옮겨진다.
J는 사진과 짧은 글로 식물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나는 앞으로 하루하루 변화될 애기들의 모습을 그림에도 잘 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