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24. 입춘을 맞이하는 마음
점심약속.
그림책 <함마드와 올리브할아버지>의 원화전시회를 보러, 그리고 이채샘과 나도샘을 만나기 위해 멀리 광진구를 향했다. 사사로운 식당 내부공간에 갤러리 '사진적'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는데 현관문을 여는 순간 따스한 분위기가 와락 느껴졌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두 분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계신다. 부천에서 서둘러 떠난다고 했는데 7호선을 한 대 놓치고 나니 7분을 지각하였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원화를 둘러 본다. 책 속의 그림도 참 예쁜데 원화 그대로 마주하니 그 따스한 느낌이 다가온다. (이 책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기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채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이 입춘이잖아요. '입'을 그동안 '들 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세울 립' 이더라고요." "아!!!!...." 나와 나도샘이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으며 어쩜 조상들은 절기의 이름을 이토록 의미돋게 지었을까? 신기방기하다. '입춘'이 새롭게 다가온다. 결국 봄은 세워야 하는 거란다. 봄에 태어난 내게 봄은 언제고 제일 좋은 계절, 기다리는 나날! 왠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밥을 맛있게 먹는 동안 우리는 사이사이 재미나게 수다를 했다.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내게 '짝꿍'의 안부를 물으셔서 작년말 귀농한 사연, 그 지역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었다. 그랬더니 가을 워크숍을 그곳으로 가면 좋겠다고! 늘 열정적인 모임이고, 말이 나오면 이루는 편이라 진짜 가을에 모임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한시간즘 지났을까? 우리는 하던 수다를 다시 주머니에 넣어두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우리가 만난 첫번째 이유도 집회였다. 군자역에서 5호선을 타고 10번째 정거장이 광화문이었다. 광장으로 나와서 집회 장소를 찾았는데 한눈에 찾기 어려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회가 허가되지 않아 장소가 밀려났고 서울시청부터 광화문광장까지 경찰이 경계선을 만들었다. 10.29.밤 그곳에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찰들이 있었다면...... 주최측에서 빠르게 대응하여 집회 장소를 다시 서울시청광장쪽으로 옮겼다. 시민들은 손피켓을 들고 시청을 향해 함께 걸었다. 별도 무대는 없었지만 방송차량이 앞을 차지했고 그 바로 앞에 유가족들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유가족들은 이태원에서부터 행진을 하여 하루 전 밤에 만들어진 분향소에 가족의 위패와 영정을 올리고 시민들의 틈 사이로 걸어 앞으로 나아갔다. 빨간색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우리는 어쩌다 바깥쪽에 서있었는데 한 분 한 분이 우리 앞을 지나가셨다. 나는 뭉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말없이 눈물을 왈칵 쏟아버렸다. 바라보기조차 어려워서 고개를 떨군 채. 옆에서는 중년의 여성이 "수고가 많습니다. 힘내세요." 라며 지나가는 유가족의 어깨를 보듬어주었다. 맞은 편에서는 한 청년이 "함께 하겠습니다." 우직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100일이 넘도록 정부의 공식적 사과는 없었고, 행정안전부 장관은 자기 자리를 고수하였다.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다.
분향소 옆으로 좀 걸어보았다. 참사 피해자들의 영정사진과 위패가 보인다. 시청앞으로 오기 전, 광화문 앞에 차려진 무대위 대형 화면에 한 명 한 명의 사진과 영상이 흘러갔다. 해맑게 웃는 얼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렸다. 유가족들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수조차 없다. 시청 앞, 펄럭이는 깃발들을 바라보다가 정문에 붙은 메시지를 읽었다. '겨울이 온 세상에 말했다. 홀로 추운 삶은 없다고.' 그 옆에으로는 '동행할수록 더 매력있는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이 흥행하면서 아마 따라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계절마다(달마다인가?) 바뀌는 교보문고 글판은 때마다 이목을 끌고 화제가 된다. 공감과 희망의 메시지들이 붙으니 관심사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한참을 바라보거나 사진을 찍어 벗들에게 보내곤 했다. 그것과 비교하니, 서울시청의 메시지 카드는 뭐랄까. 늬들은 그게 무슨 말인줄이나 알고 썼니? 동행은 커녕 홀로 춥도록 많은 삶들을 내팽겨치지 않았는가. 광장도 허하지 않고, 분향소도 허하지 않는 행정은 무엇을 공식사과라고 들고 나타났던 건지.. 눈물을 보이며 고개를 떨구며 진심어린 사과는 한 순간 모면을 위한 움직임이 아닌가... 늘상 이런 행정이 밉기만 하다.
그래서 다시 봄.
그 날 함께 걸었던 시민들은 봄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이다.
우리, "그래도 봄은 오고 만다."는 말의 힘을 믿어 보자.
절망 대신 희망을 가슴에 품고
그래도 봄은 온다 - 얀카 쿠팔라(벨라루스)
사방에서 배반의 먹구름이
하늘을 채워도 겁내지 마라,
어둠이 마법을 걸고
휴경지 위에 까마귀가 원을 그리듯 날아도
그래도 봄은 온다!
숲 구석구석 노랑 잎사귀가
떨어져도 겁내지 마라,
하루 내내 새 노래가 들리지 않아도
겁쟁이 토끼만 스쳐도
그래도 봄은 온다!
초라한 밭 끝에서 끝까지
텅 비었어도 겁내지 마라,
농민의 손은 운이 없어
별 수확 없이 밭매기를 끝냈어도
그래도 봄은 온다!
자유로운 힘이 끈으로 묶여
잠들어 있어도 겁내지 마라,
폭력이 진실을 억눌러도
죽음이 여기저기서 무덤을 파고 있어도
그래도 봄은 온다!
그래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