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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일 Feb 21. 2023

누구나 마음의 안식처 하나쯤은...    속초 1

매일 해를 보러 나갑니다..... 

각자 유난히 좋아하는 곳이 있겠지. 


나에게는 그런 곳이 너무도 많은데(사방팔방 돌아다니는 걸 밥먹듯이 하는 사람) 최근에는 한 곳만 주구장창 간다. 그곳이 어디냐 하면 사시사철 시원한 동쪽 바다가 있는 곳, 끝없이 펼쳐진 산과 둘레를 걸으며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기 좋은 호수가 있는 곳! 속초다. 


아! 갑자기 지명이 궁금해져서 검색을 해봤다. (검색하다가, 누군가 지역 정보에 '네일샵'을 묻길래, 한 곳 추천하고 오느라 늦었다. 이눔의 오지랖!) 

 


[ 束草 ]


강원도 속초시는 ‘풀 묶음’의 고장에서 출발했다. 풀 묶음을 세운 듯한 울산 바위에 비유하든, 베어 놓은 갈대의 묶음이든 간에, 소재가 풀에 기초한 초재(草材)인 것만은 분명하다. 북쪽으로 풀이 푸른 데서 이름 붙여진 청초(靑草)호가 있고, 동쪽 바다에는 풀이 많이 자란 데서 붙여진 조도가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풀이 무성한 해안 환경인 것이 분명하다. 허백은 시에서 ‘오경(五更)이 지나 새벽빛은 빈 누각에 돋아나고, 한 잎의 가을 소리는 작은 다락에 가득하네. 물결을 쫓아가는 갈매기는 저 갈대를 아는데, 수풀 찾는 저녁 새는 쉴 곳을 얻었네’라고 이곳의 정경을 읊었다. 여기에서 저녁 새의 쉴 곳이 되는 수풀은 나무숲만이 아니라, 풀까지 포함하는 조류의 안식처를 말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속초 [束草] - 풀 묶음의 고장 (땅 이름 점의 미학, 2008. 5. 15., 오홍석)


-----> 그렇다고 한다. 



'풀 묶음'의 고장 속초가 어쩌다 내 마음에 들어왔는가에 대한 설명을 좀 붙여야겠다. 속초를 처음 간 것이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속초를 정기적으로 가게 된 것은 2017년부터다. 아니 2016년인가? (확인필요)   함께 일하던 동료가 속초에 서점을 열었고, 북스테이를 겸한 곳이었다. 홀로 여행할 때가 종종 있는 사람으로 게스트하우스는 매우 친근한 곳이었는데 1층에 서점, 2층에 게스트하우스라니! 내가 단골이 될 수 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속초여행은 정기적으로 한 해 1-2번은 꼭 가게 되었다. 때로는 혼자 훌훌 떠났고 어떤 때는 작정하고 벗들과 찾아갔다. 누구와 가느냐도 중요했지만 어느때 가느냐도 한 몫해서 철마다 속초는 다른 매력을 뿜어냈다. 


그러다 정말 어쩌다 1년을 속초에 살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함께 일했던 동료의 제안에 며칠 쉬러 갔다가 1년을 눌러 앉게 된 셈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해외여행이 차츰 묶이고, 국내 여행 특히 강원도 여행이 각광을 받게 되었고 지역살이가 유행인데 내가 그 반열에 오를 줄이야... 그땐 정말 몰랐다. 퇴사를 하며 미리 세워둔 계획은 없었지만 늘상 긴 시간이 주어진다면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었는데... 그 바램은 이루지 못했지만 근거지를 떠나 잠시 이주민이 되어 살게 된 것이다. 1박 2일, 2박 3일, 3박 4일이 아니라, 속초에서 1년 살이를 하게 되다니! 



무엇을 하겠노라 딱히 맘먹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고 소진된 몸과 맘을 일으키고 충전하는 것에 온 힘을 기울자니 바다, 산, 호수가 함께 하는 속초는 그 자체로 내게 안식처였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자연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사실을 매일매일, 순간순간 깨달았다. 그러때마다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겼다. 속초로 오기 전의 나의 무너진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 나와의 첫번째 약속이었다. 먹고 자고 일어나기를 잘하는 것! 특히 자는 것이 힘들었는데 불면에 시달렸다. 매일밤 잠드는 것이 어려웠고, 어쩌다 잠이 들었다가 깨면 시작하는 하루가 괴로웠다. 끝나기를 바랬었는데 다시 시작이라니!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그렇게 무너져버린 일상을 다시 시작하는 것! 그 약속은 결국 잘 지켜낸 것 같다. 제때 먹고 자는 일, 상쾌하게 일어 나는 것만으로도 내 자신이 대견했다. 


다시 건강한 나를 만나는데 특히 도움이 된 일이 하나 있다. 매일같이 했던 일이 있다. 비나 눈이 내리는 날이 아닌 이상 떠오르는 태양을 만나러 나가는 것.. 日出! 해가 떠오르는 걸 일컫는 말인데, 매일 (해보러) 나가는내게는 또 다른 뜻이 된다. 일년에 한번을, 아니 일생에 한번을 볼까말까한 일출을 매일매일 본다고? "어머어머, 그 아침에 눈이 떠진단 말이야?", "잠도 제대로 못자는 사람이, 출근 안해도 되는 사람이 늦잠 좀 자고 하지~안 피곤해?", "우와~ 부지런하다잉!" 친구들이 신기해했다. "속초 살면서도 일출보는 일이 손에 꼽는데 그걸 매일 본단 말이에요?" 속초에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대단하다고 했다.

2022년 12월 23일 일출. 살았던 집을 정리하기 위해 갔던 다음날 아침의 해다. 바다에서 모락모락 김이 났다.


매일같이 떠오르는 해, 그런데 날마다 다르다. 미리 전날 날씨를 확인하고 나가는데 잔뜩 흐린 날이어도 나갔다. 구름이 온통 가려져 있어 오늘은 어렵겠다 하면 어느새 구름이 걷혀 잘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철따라 달따라 떠오르는 시각은 물론이고 더 잘 볼 수 있는 위치도 달라졌다. 그러니 내게는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새 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날은 눈물이 또르륵 떨어졌다.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이 되었다. 그러다 또 어느 날은 흐느껴 울기도 했다. (주변에 한 명이라도 사람이 있었기에 엉엉 울고 싶어도 입틀막!) 가슴 저 구석에 응어리진 것들이 다 뿜어나오는 듯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데 외롭지 않고 빛이 나를 감싸 안는 해를 마주할수록 치유가 되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나는 하나 하나의 아침을 맞아 내 것으로 만들어 갔다. 


단지 1년을 살았을 뿐인데 속초와 정이 옴팡 든 것은 일출 산책이 팔할이다. 

그렇게 나는 속초예찬론자, 일출러가 되고 말았다. 


(속초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메리 올리버가 시들을 읽으면 마음이 살아난다. 

 P.S. 자연과의 교감하며 자연의 경이로움과 그 안에서 느끼는 기쁨을 언어로 표현한 메리 올리버를 좋아한다. 그를 알게 된 이야기는 다음에, 차차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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