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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다은 Mar 07. 2019

야근을 더 잘할 수 있었던 이유

잘 하고 싶지 않지만 말입니다..


요즘따라 왠지 너무 무기력하구나,라고 느껴졌다. 새로 들어간 프로젝트가 예상시기보다 빨리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말했을 땐 언제고 대표님께서는 다른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말했다. 너무한거 아니야? 시간을 쪼개봐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내가 봤을 때도 그랬다. 뭘 그리 쫓기듯이 일감을 주고 성을 쌓는건지 이해가 가지 않을 무렵. 비단 나만 갖고있는 고민은 아니었다. 친구를 만나도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회사도 그래. 어느 회사 대표님이나 다 비슷한 생각인건지, 아님 합심해서 현대시대의 노동환경을 이렇게 만들어 둔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피할 수 없는 야근의 굴레에서 나도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였던.




그 날도 택시를 타고 집에가는 길이었다.


야근이라는 문화를 옹호하려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왜 이렇게 사장님들은 '사원이 야근하는 모습'을 좋아하나 싶을 정도로 싫어했던 나지만 어쨋든 직장인 n년차로서 들었던 생각은 어느 회사에 있든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첫째가 식욕, 둘째가 수면욕, 셋째가 퇴사욕. 그리고 이런 것들과 야근의 상관관계. 과업을 마치고 나서 이루어지는 친한 직장 동료들과의 퇴근 후 술 한잔은 왜이렇게 맛있고 지하철에서의 아침잠은 또 왜이렇게 달콤하고 좀 평온한 날이다 싶음 잊기 무섭게 '퇴사할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건지. 그 때 수제맥주라는 맥주집은 다 가보고 아침길에 읽으리라 다짐했던 책들은 한참이나 침대 옆에 쌓여있었다.


이번달 다은님 택시비가 어마어마하게 나왔던데, 하고 농담삼아 얘기하시던 그 날도 그렇게 택시를 타고 집에가고 있었다. 왠지 모를 무기력함이 느껴져 생각했다. 나는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긴 하지만 전철에서 앉아가기 때문에 충분히 자고 있다 생각했고 불면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딱히 끼니를 거르거나 식이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이 피곤했고 안걸리던 감기도 종종 걸렸다. 평소 갖고 있던 비염이나 알레르기가 문제를 일으키는 일도 생겼다. 주말에도 조조로 일어나 영화보고 입장시간에 전시회가는게 취미였던 나기에 이런 무기력함은 조금 낯설었다. 또 하나 문제가 되었던 것은 뱃살이었다. 야근하면서 먹게 된 야식과 한잔두잔 마시게 된 술이 문제가 되어 정신을 차려보니 근 몇년새에 턱과 허리에 라인이 없어졌던 것이다.




이대로는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에 집에 조금 일찍오는 날은 9시반 정도였고, 조금 늦으면 11시, 택시를 타고 오는날은 2시였다. 

나는 택시를 타고 오는 날만을 제외하고 12시전에 집에 들어오는 날은 체력이 닿는 한 운동을 하고 자리라 다짐했다. 뱃살이라도 빼봐야겠다는 소박한 목표를 가지고 서툰 운동라이프가 시작 된 것이다.

처음으로 했던 것은 집에서 편하게 할 수 있는 20-30분 정도의 유산소 운동이었다. 유투브에는 고맙게도 편하게 보고 따라할 수 있는 운동 사이클을 편집해서 올려주는 채널이 많았다. 하다보니까 외국과 국내 채널 구분할 것 없이 이것저것 많이 보게 되었었는데 종종 하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채널도 생기고 그랬다. 유투브를 접하게 되면서 가장 먼저 '구독'버튼을 누르게 된 채널이 운동채널 이었는데 노트북에 그 영상을 틀고 작은방으로 가져가 어떻게든 뛰어보려 애썼다. 다행히 집은 1층이었기에 층간소음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동 초반 나의 스퀏 자세는 가히 봐줄만 했다. 트레이너도 없이 했으니 자세가 잘 되고있는지는 알리가 없고 그냥 갯수에만 초점을 맞춰 했었다. 유투브 영상에서 나오고 있었고 살을 빼는데에도 좋다는 얘기를 이곳저곳에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엉망이었던 그 스쿼트 자세도 

계속해서 하다보니 점차 바로잡히는 기분이 들었다. 허벅지 근육이 생기면서 엉덩이를 뒤로 뺄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그때가 하루 스쿼트 10개씩 3세트에서 30개씩 3세트까지 했었던 때였다. 스쿼트를 한 날은 힘들어서 다른 운동은 많이하지 못했는데 이 때 플랭크라는 것을 알게되어 처음으로 시도해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역시나 힘들었다.


청춘이 너무 빨리 흘러간다고 생각하세요?


당시 회사가 워낙에 멀어 집에 오는 시간이 평균 11시이다 보니 운동을 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옆집 영희는 아침에 수영을 한다는데... 운동은 해야되겠고 아침에는 6시반에 일어나니 힘들고 돈은 아끼고 싶고, 이러저러하여 일찍 도착한날이든 늦게 도착하는 날이든 적은 시간에 효과를 내는 운동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버피테스트였다.


죽어요


웹툰에서 봤었던 것 같다. 이거 짧게만 하면 다른 운동 안해도 효과가 쩐대. 그래서 한번 해봤다. 무릎 굽혔다 엎드려 뻗쳐 자세로 뻗었다 다시 굽혔다 일어설때 펄쩍 뛰면, 이게 한번. 몇개 하는데에 숨이 금방찼다. 처음부터 원만하진 않았다. 하지만 내게 시간은 많지 않았고, 야근을 하면서 야식도 종종 먹는 상황이었고. 무기력함은 둘째치고 회사 다시면서 살쪄서 우울함에 빠지고 싶진 않았다. 처음에는 10개씩 3세트, 그다음부턴 15개씩 3세트를 했다. 죽을만큼 힘들다란 말이 일을 할때랑은 또 달랐다. 그런식으로 버피테스를 하고 샤워하고 잠을자면 잠도 잘왔다. 아무튼 그런후로 나는




야식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 

어느순간부터 피곤함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이 때 대표님께서 내게 하셨던 말이 생각난다. 그 무렵 직장 동료들이 다은님 체력 진짜 좋은거같아요, 라고 종종 얘길 했었는데 그런 말이 하나둘 모여 대표님 인식에 나란 인간이 =체력짱기력짱으로 박혀버린 것이다. 아니 얘가 야근을 해도 지치질 않네? 이런애 흔치 않은데? 거기다 나름 디자이너 파트장으로 일하고 있어서 디자인과 퍼블리싱을 하는 동시에 일정관리도 하고 팀커뮤니케이션도 하고 뭐 이런저런 일이란 일은 다 맡은 상황이었던 내가 체력도 좋다는 얘기가 솔솔 들리니 대표님 입장에선 내가 무척 맘에드는 건담1호였던 것 같다.

근데 잠깐, 스쿼트는 근력운동이라치고 버피테스트는 근력운동도 아닌데 체력이랑 무슨상관인데? 라고 물으신다면 경기도 오산이다. 당시 나는 체력을 올릴거야! 라는 목표로 버피테스트나 다른 운동을 시작한게 아니었다. 그냥 하다보니까, 어쩌다보니까, 변화한 것은 운동을 좀 했단 것 밖에 없는데, 그것만으로도 저절로 체력이 좋아졌다. 정확한 시점은 없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나는 회사내에 야근의아이콘과 더불어 체력의아이콘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은 여전히 힘든 면이 있었기에 나는 꾸준히 퇴사의 꿈을 갖고 있었다. 모든 직장인이 그러하듯이 어디로든지 훨훨 날아갈 수 있는, 가슴안에 봉투하나쯤은 갖고있는 그 흔한 직장인이었기에 적절한 회사로 이직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무척 많은 고심끝에 퇴사하겠다고 통보를 하게 되었다. 


대표님은 말씀하셨다.




다은님 같이 일 잘하는 사람도 없는데.


대표님은 내게 딜을 하고 계셨다. 어느순간부터 나는 '일 잘하는' 사원이 되어있었고 그 '일 잘한다'라는 것은 무척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으리라 생각들지만 뭐 어찌됐든 내가 회사내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다른팀과도 커뮤니케이션 잘 한다는 얘기가 들리고 자기일도 알아서 하고 더더욱이 별명이 체력의 아이콘이라는 얘길 회식자리에서 들었으니 내가 대표라고 해도 '체력좋은 건담1호'는 놓치기 싫었으리란 생각이 들었겠다.




결과를 말하자면, 


결국 나는 그때 딜을 하고도 넘치는 일에 더이상 안되겠단 판단이 들어 한 1년 정도가 지나고 난 후 퇴사를 했다. 내 체력을 믿고 이것저것 넘어오는 방대한 양의 일감이 단순히 양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대부분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동은, 퇴사를 하고난 후에도 꾸준히 좋아하는 채널을 보며 지속했기에 점차 많은시간, 많은 세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나는 결혼 준비를 위해 PT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단순히 체력의 상승을 넘어 엉덩이나 허리 등 바디쉐잎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 gym에 갔을때는 그렇게 부끄럽고 누가 쳐다보는 것만 같고 뭘 하지 못했는데 PT 쓰앵님이 이거저거 알려주신 뒤로 누가 보든말든 씩씩하게 데드리프트하고 바벨스쿼트하고 풀다운하고 킥백하고 뭐 아무튼 이것저것 다 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오늘은 어떤걸로 루틴을 짤까'라는 건방진 생각도 한다. 또한 고강도고효율 운동을 어느정도 즐기는 수준이 되었다. 


야근을 더 잘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나는 야근을 싫어했고, 야근이란 것에 내 자신의 밸런스가 무너지는 것이 싫어서 시작했었다. 헌데 결과적으로는 활기라던가 퇴근이후에도 이것저것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줬던 것 같다. 체력뿐만 아니라 내 삶에 전반적으로, 회사생활 하는데에 여러 도움을 줬으니 막상 할 때는 '죽겠다' 소리가 나오더라도 계속 할 수 있는 의지가 생겼던 것 같다. 

내 생각에 야근과 운동에는 닮은 점이 있다. 야근도 운동도 주 3회만 해도 힘들고 주 3회만 해도 충분하다. 당장 나도 이곳저곳이 쑤시고, 환절기면 꼭 아프다 싶은 분들. 하루 20분의 차이를 느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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