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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Nov 06. 2022

크림의 마이크로카피는 에어비앤비보다 덜 직관적이다

[PM 북클럽] <마이크로카피(2018)> 요약 및 정리

서론:

인터페이스를

빛나게 만드는 언어


  <마이크로카피(2018)>를 완독했다. 다 읽고 보니 PM/PO/서비스 기획자보다는 프로덕트 디자이너에게 더 유용했을 법한 책이었다. 앞부분의 보이스앤톤 디자인에 대한 내용은 서비스의 전체 맥락과 경험을 고려했기에 PM/PO/서비스 기획자에게도 적합했지만, 뒤로 갈수록 인터페이스의 컴포넌트 하나하나를 어떻게 디자인하면 좋을지 구체적인 사례 위주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저와의 최접점인터페이스에서 서비스의 가치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서의 마이크로카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특히, 핀테크, B2B SaaS, 협업 툴처럼 복잡성이 있는 서비스일수록 적확한 언어를 사용하여 유저의 이해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 직전에 채용담당자라는 전문 고객군을 위한 B2B SaaS 서비스의 PO로 역할했다보니, CS로 인입되는 유저들의 문의사항 UX Writing으로 해결할 있었던 부분이 상당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이크로카피>내 소제목 중 하나인 "제 때의 바늘 한 땀이 나중의 아홉 땀을 덜어준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오늘은 오랜만에 실제 프로덕트를 사례로 들어 UX Writing을 공부하려고 한다.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서비스 중에서 유저로부터 신뢰성을 얻을 필요가 다른 프로덕트들에 비해 긴요한 프로덕트를 선정했다. <마이크로카피>의 뒷부분에서는 UX Writing을 통해 유저의 우려와 의심을 해소하는 내용이 주가 되기 때문이다. 유저들의 믿음과 신뢰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프로덕트, 바로 한정판 거래 플랫폼 크림(KREAM)이다.






1.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



  크림은 리셀, 즉 프리미엄 가치가 붙은 물건을 구매해 정가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해 차익을 남기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한정판 거래 서비스이다. 경기 침체 장기화, 취업난, 불확실한 미래 등으로 미래에 대한 대비보다는 현재의 만족을 얻는 것에 집중하는 MZ세대를 주요 타겟으로 삼는다. 아낄 때는 아끼지만 쓸 때는 과감히, 고가의 명품에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여는 세대가 바로 MZ세대이기 때문이다.

  크림에서 이루어지는 리셀은 중고거래와는 다르다. 중고거래는 기존에 사용하던 물건을 매매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그러나 리셀은 거래되는 물건 또한 가격표가 그대로 붙어 있거나 포장도 채 뜯지 않은 새 상품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매매의 목적 자체가 시세 차익을 노린 투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출처=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1083093141


  국내에 상용화 중인 대표적인 리셀 플랫폼으로는 네이버의 크림과 무신사의 솔드아웃이 있다. 이렇듯 주요 플랫폼 기업들이 리셀 시장을 눈여겨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투자은행 코웬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세계 스니커즈 리셀 시장은 2025년까지 7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1020세대가 소위 명품으로 불리는 해외 고가 브랜드와 한정판 스니커즈를 소유가 아니라 경험의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사고파는 행위에 익숙해져 있다는 점이 시장이 커지고 있는 배경이다. 국내 한정판 신발 리셀 시장 규모는 5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출처=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1083093141)




크림은 회원가입

OO OOO를 수집한다



  크림은 회원가입을 할 때 이메일과 비밀번호 외에도 추가적인 정보를 하나 더 받는다. 바로 신발 사이즈이다. 스니커즈 리셀이 주가 되는 프로덕트인 만큼 신규 고객으로부터 확보해야 할 데이터 중 신발 사이즈를 필수적으로 포함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처음 위와 같은 신발 사이즈 선택 화면을 맞닥뜨렸을 때는 0.1초의 망설임이 있었다. "어차피 당장 신발을 구매할 것도 아닌데 내 신발 사이즈를 제공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물론 복잡한 프로세스가 아니기에 버튼 하나만 눌러서 사이즈 선택을 완료했지만, 사용자는 아주 사소한 이유로도 프로세스를 그만둘 수 있다.



  <마이크로카피>에서는 어떻게 입력할지 불명확한 입력 필드 한 개, 너무 힘든 일처럼 보이는 태스크, 개인 정보 보호와 관련된 아주 사소한 우려, 또는 답이 없는 질문에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하던 프로세스를 충분히 내던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때, 잘 쓰인 UX Writing은 UX상에서 발생한 마찰을 줄여주어 사용자가 계속해서 프로세스를 수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만약 회원가입 프로세스가 좀 더 복잡했다면 소중한 고객을 서비스에 들이기도 전에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용자는 어떠한 프로세스를 시작할 때 그 과정이 빨리 끝날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꼭 필요한 데이터 외에는 서비스 가입 이후 설정할 수 있도록 설계하여야 한다. 일단 빠르게 가입을 완료하게 하고, 이후 환경설정에서 이 데이터들을 언제든 변경할 수 있다는 점을 알리면 좋다.




신뢰는 공을 들여 얻어라


출처=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3025757


  크림이라는 프로덕트의 핵심 전략은 '국내 최대 규모 검수력'이다. 고가의 제품이 거래되는 데다가, 판매자와 구매자를 중개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보니 중간 검수에 총력을 기울여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리셀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진품 여부를 전문 검수팀이 검수하여 상품 구매에 신뢰감을 준 것이다. 쿠팡과 컬리가 물류에 투자한 것과는 다른 방향의 행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크림의 이러한 사업전략이 앱 내 인터페이스에는 어떻게 담겼을지 확인해보자. 위 화면은 현재 크림에 게재된 매물인 노스페이스 1996 에코 눕시 자켓 블랙의 상세 페이지이다.


  눈에 띄는 것은 제품 이미지와 추천 상품 하단에 자리잡은 영역이다. '100% 정품 보증', '엄격한 다중 검수', '정품 인증 패키지'라는 소제목으로 크림이 추구하고 있는 고객 신뢰 전략을 소개한다. 각각의 설명마다 적절한 로고도 함께 배치했다. 제품 바로 아래 이와 같은 설명을 배치함으로써 고객의 우려와 의심을 해소했다.


  아직 프로덕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용자는 프로덕트를 신뢰해야 할 이유가 없다. 신뢰는 공을 들여 얻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프로덕트는 사용자에게 프로덕트가 신뢰를 받을 만한 이유를 보여주어야 한다. 따라서 사용자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프로세스는 최대한 간소화해야 한다.

  온라인 구매는 고객 입장에서 가장 걱정되는 프로세스 중 하나이다. 특히 유저와 유저 간 리셀 행위가 발생하는 크림의 특성상 거래 과정의 불안이 클 수밖에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를 상세 페이지 내 인터페이스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그건 뭐죠?"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의 프로덕트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따라서 사용자 테스트와 같은 방식을 통해서 끊임없이 고객 입장의 시각을 유지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인터페이스를 구성할 때 역시 혹시 '지식의 저주'에 갇히지는 않았는지 유의해야 한다.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끼리는 문제가 전혀 없다고 판단한 부분에서조차 프로덕트에 덜 익숙한 고객은 저도 모르게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마이크로카피>에서는 사용자의 시선으로 프로세스를 확인하고, 질문이 생길 수 있는 곳을 찾은 다음, 해당 질문에 답하는 마이크로카피를 작성하기 위한 다음의 방법을 제시한다.


프로세스를 검토해서 내부 기술 용어와 사용자의 눈으로 볼 때 일상적이지 않거나 생소한, 사용자가 "그건 뭐죠?"라고 물을 수 있는 용어를 찾아라.

찾아낸 모든 용어를 더 단순한 단어로 바꿀 수 있는지 체크하라.

용어를 단순하게 만들 수 없다면 설명과 함께 마이크로카피를 추가하라.




툴팁

알려드립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네이버 부동산, FLO, 당근마켓의 툴팁


  사용자 입장에서 생소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기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는 위 사진과 같은 툴팁이 있다. 인터페이스의 복잡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정보를 원하는 사용자라면 언제든지 확인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툴팁은 사용자 입장에서 '이게 뭐지?'라는 질문이 나올 법한 문구 위에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작은 창이 뜨도록 하여 간단한 설명을 제공한다.



  크림의 경우에는 물음표 아이콘을 누르면 툴팁 대신 모달이 열리도록 했다. '95점 합격'이라는 시스템은 크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프로세스인데, 이에 뒤따르는 정보량이 많이 때문에 모달로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위 사진의 모달은 크림의 신규 고객이 95점 합격이라는 시스템을 이해하는 유일무이한 근거로 작용한다. 만약에 모달 없이 이 설명을 보여주려고 했다면 안그래도 복잡한 상세 페이지가 컴포넌트로 북적거리는 바람에 나쁜 UX가 형성됐을 것이다. 






PM의 시선

한 스쿱


크림의 고객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95점 합격'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을 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아쉬웠던 점은, 이 포스팅을 위해 크림을 처음 다운받은 내가 저 모달에 적힌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는 거다(...). "혹시 나만 이런 건가?" 싶어 구글링으로 크림의 95점 합격에 대해 추가적으로 찾아보려고 했고, 이때 다른 고객들도 비슷한 의문을 갖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위와 같은 구글 연관 검색어에서 고객 입장에선 서비스 내에서 제공하는 설명만으로는 95점 합격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웠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정 서비스에서 고유명사로 이름 붙여져 상용화되고 있는 기능이라면 다 이정도 혼란은 뒤따르는 건가 싶어, 비교군으로서 컬리의 샛별배송을 검색해봤다.



  컬리의 샛별배송 역시 컬리 고유의 콜드체인 운송을 부르는 새로운 단어임에도 의미 전달의 오류가 크게 존재하지는 않는 듯했다. 그렇다면 왜 크림의 95점 합격에서 이런 전달 오류가 발생하는 걸까? 나 역시 크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 오전 11시에 가졌던 PM 북클럽 실시간 토론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의견으로는 "'95점 합격'이라는 워딩이 고객 입장이 아닌 서비스 입장에서 쓰였기 때문이 아닐까?"가 있었다. 크림은 각각의 상품에 대한 평가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때, 크림의 고객은 상품의 구매자 또는 판매자이다.

  크림이라는 서비스 측에서 상품을 '채점'하는 행위에서 도출된 결과가 '합격'이다. 상품을 구매하거나 판매하기만 하는 고객은 '합격'이라는 서술어의 주체가 없다. 따라서 고객 입장에선 합격이라는 단어가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갸우뚱할 수 있고, 더불어 95점이라는 특정한 점수를 선정한 것도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이에 따라 의미상의 간극이 발생하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에어비앤비는 서비스 측에서 검증한 숙소를 표기할 때 '에어커버'라는 직관적인 워딩을 활용한다


  물론 크림이 해당 프로세스를 95점 합격이라고 이름 붙인 데는 나름의 이유와 배경이 존재하겠지만, 나라는 신규 고객의 입장에서는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UX Writing이었다. 크림은 신뢰성이 주된 동력이 되는 리셀 플랫폼인 만큼 고객 입장에서 믿음을 갖고 유저 시나리오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세세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 듯하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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