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면접을 보고 왔습니다. 프리랜서에 왜 면접이 필요하냐고요? 처음에 프리랜서의 세계로 진입하는 신규 프리랜서들은 다양한 클라이언트들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정보를 제공받기 위하여 에이전시에 소속하는 경우도 있나 봅니다. 바로 저처럼요.
프리랜서를 생각한 이유는 3가지였습니다. 첫째, 조금 더 적게 일하고 싶었습니다. 아침 6시 30분에 통근버스 탑승, 잦은 야근, 가끔의 주말 출근이나 잔여 업무들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둘째, 조금 더 적게 일하더라도, 나의 자존감을 지탱해줄 수 있는 나의 일이 필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금 더 적은 시간 일하면서도 나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일을 하면,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프리랜서라고 하면 흔히 통번역가, 작가, IT 기술자, 데이터 처리자 등의 전문가 영역을 떠올립니다. 저는 이러한 전문 기술은 없지만, 서울 소재의 모 대학교 인재개발원에서의 취업 멘토링 강의 경험을 살려 전문 직업상담사가 되고자 했습니다. 이 분야에 큰 뜻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제가 현재 가진 자원으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강의도 재미있었고, 5년 넘게 강의 평가도 4.8점(5점 만점) 이상이었던 점을 보면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부터 어떻게 하면 대학교의 전문 취업 강사가 될 수 있는지 알아보았고, 올해 초에는 본격적인 직업 전향을 위하여 직업상담사 2급(고용노동부)을 취득했습니다.
제가 지원한 에이전시는 취업캠프, 자소서 첨삭, 면접 특강, 커리어멘토링 등을 진행하며, 학교와 강사를 연결시켜 주는 회사였습니다. 근무조건과 전형절차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분당에 위치한 취업교육강사 Agency 모집 공고 (feat.사기꾼)
사실 면접 날짜를 잡을 때부터 조금 이상하기는 했습니다.
면접 관련 내용은 문자나 전화로만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고, 메일은 일주일이 넘도록 미확인으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대표님은 면접을 잡았다가 당일에 취소하시고, 주말로 다시 잡았다가, 또다시 시간을 한 번 더 바꾸셨습니다. 스타트업 형태로 운영을 하시다 보니 겪는 어려움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토요일 오후 5시, 미리 예정되어 있던 가족 모임을 서둘러 정리하고 면접 장소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시에서 지원하는 스타트업 오피스 건물이었습니다.
면접은 가상 취업멘토링 Q&A로 시작했습니다. 취업 트렌드, 채용 절차, 면접 및 자기소개서 작성 노하우 등을 물어보셨고 제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답변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공계 관련 질문을 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문과 취업 멘토로 지원했는데 말이죠. 전자, 화학, 기계 별 직무 특성과 준비해야 할 내용들을 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경영, 마케팅, 인사, 영업, MD 등 직무에 대한 취업 지원은 가능하나 이공계에 대한 멘토링은 저의 경험이나 지식의 한계로 어려울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대표님께서는 저의 전문성 부족을 지적하시며 이 시장에서 직업상담 전문가가 되려면 이공계 쪽도 빠삭하게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본사에서 진행하는 4주의 교육을 이수하면 그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고 제안하시며 말입니다.
순간 고민이 됐습니다. 4주의 교육을 이수한다고 이공계 진로 상담을 할 정도로 전문성을 갖출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들었고, 직업상담사가 되더라도 제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분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 측에서도 심리학, 경영학을 전공한 마케터 출신을 이과 강사로 뽑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대표님 말씀처럼 이공계 진로 상담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과연 신규 직업상담사로 시장에 뛰어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들어서 잠시 혼란스러웠습니다.
@ SBS 골목시당, 백종원님의 팩트 폭행
이러한 고민은 대표님의 다음 말을 듣자마자 싹 정리가 됐습니다. 강사 프리랜서 목록에 이름을 올리려면 총 180만 원 이상의 회비를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4주의 교육 이수 비용으로 66만 원(V.A.T 별도), 조합 가입 비용으로 100만 원, 매달 회비는 20만 원 이상으로 별도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 샘플 강의도 통과를 해야 하는데, 강의 만족도 95% 이상이 나올 때까지 정식 강사에 이름이 올라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대신 혜택으로 샘플 강의는 점수가 나올 때까지 무료로 제공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면서요. 샘플 강의 비용은 얼마인지 여쭙자, 강의비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대학에서 강사비는 제공되나, 역량을 키워주기 위함이기 때문에 그 돈은 회사에서 가지고 가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하여 정식 강사가 되면 “회사 : 강사 = 3:1”로 임금 분배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강의 당 10만 원이라고 치면 강사가 2.5만 원을 가지고 가고, 회사가 7.5만 원을 가지고 가는 셈입니다.
더 이상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었지만,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기분이 참 별로였습니다. 라이브 하게 표현하면 기분이 참 더러웠습니다. 오피스도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곳이었고, 활동비도 정부에서 지원이 되는 스타트업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교육을 명목으로 구직자의 돈을 가지고 가고, 오피스 대여비 · 대학교 컨택 비용 등 명목으로 회비를 걷으며, 노동에 대한 적당한 대우는커녕 샘플 강의라는 타이틀로 노동 착취를 하고 있다니요. 만족도 95%라는 허들을 통과하지 못하면 강사 자격이 없다는 명목으로 노동 착취마저 정당화하고 있는 스타트업 대표의 탐욕스러운 마음이 정말 가증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회사 안은 전쟁이고 나오면 지옥이라더니,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온 몸으로 체감한 날이었습니다.
참으로 값진 1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동경하던 프리랜서의 현실적인 측면을 볼 수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특정한 소속 없이 프로젝트 별로 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기술을 활용하여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모습만을 상상했는데, 불안정한 고용 형태와 저임금, 더욱 치열한 경쟁, 출퇴근이 없는 업무 시간 등 프리랜서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들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머리로만 알고 있고 전혀 실감하지 못했던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혜택들이 크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 소속된 임금 노동자들이 가진 안정성이 특히나 그랬습니다.
인생의 중대사를 앞두고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뻔뻔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테라오 겐>
역시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게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 가치들에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가가 중요한 것이겠죠. 대신 선택을 했으면 선택하지 않은 것을 바라보면 안 됩니다. 선택한 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되도록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것이 기본 원칙입니다. 때문에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반드시 상상 속 일들의 현실은 어떤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보고 싶은 모습 말고, 실제 모습을 봐야 합니다.
저는 이 날 면접으로 제가 직업상담사 프리랜서로 전향을 하게 될 경우 어떠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