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치가 생기면 치과에 간다. 미리 정기 검진을 하지 않았다면 탈이 나야 부랴부랴 치과에 간다. 나이가 들면 잇몸까지도 신경을 써야 한다. 얼마 전에 잇몸 치료를 했다.
치과에 갈 때마다 나는 옛 일이 떠오른다. 결혼을 앞둔 시점이었다. 워낙 경제적으로 힘든 때여서 증상이 생기자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치과에 갔었다. 의사는 치료 방법에 몇 가지가 있다고 알려주었고 나는 물론 가장 저렴한 처치를 택했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덧 붙이기를 "내가 시집가고 나서 병원 갈 일이 생기면 그이가 해결해 줄 거야." 엄마는 쓸쓸하게 웃었다.
결혼을 하고 다행히 병치레를 하지 않았다. 아이 셋도 순산했고 얼마 전에서야 가입한 개인 실비보험도 혜택을 본 것이 별로 없어 보험료가 빠져나갈 때마다 아까운 생각이 들 정도다. 남편은 여전히 신나게 운동하고 그 돈으로 맛난 것을 더 많이 먹고 행복한 게 낫다고 하지만 친구들은 서서히 몸에서 신호가 올 때가 되었으니 큰돈 들기 전에 가입하라고 한다. 아무튼 둘 다 병원 출입은 많지 않아 감사하다. 다만 어지럼증으로 심하게 고생했는데 그렇게 고통을 호소했음에도 의사는 죽을병이 아니니 약 처방 잘 받고 견뎌보라고 했었다. 약은 치료제가 아니고 증상 완화제였는데 증상이 전혀 완화되지 않아 먹다 말았다. 스트레칭하며 마음을 다잡으니까 나았다.
이번에 잇몸 치료를 받을 때 다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윗니에 덧니가 섞여있다. 살짝 틀어져서 자리 잡은 앞니가 부끄러워 웃을 때마다 손으로 가리면서 웃는 것이 습관이었는데 중학생 때 좋아하던 선생님 앞에서 정신 줄 놓고 미소 짓다가 "은미가 웃을 때 앞니에서 빛이 반짝하네~." 하는 말을 공개적으로 듣는 바람에 아예 한동안 웃지를 못했던 시기도 있었다. 선생님을 향한 엉터리 사랑에서 탈출한 뒤 아주 아주 한참 후에 내가 너무 예쁘다는, 이 덧니까지도 예쁘다는 사람을 만나 30년 넘게 살고 있다. 최근에 나는 활짝 웃을 때 더 젊어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챘고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웃음이 더 헤퍼진다.
아니나 다를까 오랜 세월 뒤틀어진 덧니 사이로 충치가 생겼고 몇 년 전에 신경 치료까지 마쳤는데 그만 치아의 변색이 와버렸다. 가지런하고 하얀 이가 아니라 비뚤어진 데다가 시커먼 이가 될 조짐이다. 아무리 웃어대도 젊어 보이기는커녕 빙구가 될 판이다. 이번 치과 진료 중에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 이제 그동안 함께 했던 덧니 두 개를 방출하기로 말이다. 의사 선생님이 그 자리에 이쁘고 고른 이로 다리를 놓아주신다고 약속했다. 큰돈이 들겠지만 그래도 올봄에 가입한 치아보험으로 50프로 정도 할인받으면 용기를 낼 만해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정든 못난이 이 두 개를 빼러 치과에 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