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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Mar 26. 2022

치과에서(1)

충치가 생기면 치과에 간다. 미리 정기 검진을 하지 않았다면 탈이 나야  부랴부랴 치과에 간다. 나이가 들면 잇몸까지도 신경을 써야 한다. 얼마 전에 잇몸 치료를 했다.


치과에 갈 때마다 나는 옛 일이 떠오른다. 결혼을 앞둔 시점이었다. 워낙 경제적으로 힘든 때여서 증상이 생기자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치과에 갔었다. 의사는 치료 방법에 몇 가지가 있다고 알려주었고 나는 물론 가장 저렴한 처치를 택했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덧 붙이기를 "내가 시집가고 나서 병원 갈 일이 생기면 그이가 해결해 줄 거야." 엄마는 쓸쓸하게 웃었다.


결혼을 하고 다행히 병치레를 하지 않았다. 아이 셋도 순산했고 얼마 전에서야 가입한 개인 실비보험도 혜택을 본 것이 별로 없어 보험료가 빠져나갈 때마다 아까운 생각이 들 정도다. 남편은 여전히 신나게 운동하고 그 돈으로 맛난 것을 더 많이 먹고 행복한 게 낫다고 하지만 친구들은 서서히 몸에서 신호가 올 때가 되었으니 큰돈 들기 전에 가입하라고 한다. 아무튼 둘 다 병원 출입은 많지 않아 감사하다. 다만 어지럼증으로 심하게 고생했는데 그렇게 고통을 호소했음에도 의사는 죽을병이 아니니 약 처방 잘 받고 견뎌보라고 했었다. 약은 치료제가 아니고  증상 완화제였는데  증상이  전혀 완화되지 않아 먹다 말았다. 스트레칭하며 마음을 다잡으니까 나았다.


이번에 잇몸 치료를 받을 때 다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윗니에 덧니가 섞여있다. 살짝 틀어져서 자리 잡은 앞니가 부끄러워 웃을 때마다 손으로 가리면서 웃는 것이 습관이었는데 중학생 때 좋아하던 선생님 앞에서 정신 줄 놓고 미소 짓다가 "은미가 웃을 때 앞니에서 빛이 반짝하네~." 하는 말을  공개적으로 듣는 바람에 아예 한동안 웃지를 못했던 시기도 있었다. 선생님을 향한 엉터리 사랑에서 탈출한 뒤 아주 아주 한참 후에 내가 너무 예쁘다는, 이 덧니까지도 예쁘다는 사람을 만나 30년 넘게 살고 있다. 최근에 나는 활짝 웃을 때 더 젊어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챘고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웃음이 더 헤퍼진다.


아니나 다를까 오랜 세월 뒤틀어진 덧니 사이로 충치가 생겼고 몇 년 전에 신경 치료까지  마쳤는데 그만 치아의 변색이  와버렸다. 가지런하고 하얀 이가 아니라 비뚤어진 데다가 시커먼 이가 될 조짐이다. 아무리 웃어대도 젊어 보이기는커녕 빙구가 될 판이다. 이번 치과 진료 중에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 이제 그동안 함께 했던 덧니 두 개를 방출하기로 말이다. 의사 선생님이 그 자리에 이쁘고 고른 이로 다리를 놓아주신다고 약속했다. 큰돈이 들겠지만 그래도 올봄에 가입한 치아보험으로 50프로 정도 할인받으면 용기를 낼 만해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정든 못난이 이 두 개를 빼러 치과에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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