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by 조은미


즐거웠던 초등학교 시절을 끝내고 근처의 여자 중학교에 입학한 다음, 나는 오래도록 여러모로 문화충격에 시달렸다. 그중 하나가 교복이다. 철 따라 밝은 색 옷을 바꾸어 입고 다니다 새롭게 받아 든 여중생의 교복은 컴컴하고 어둡고 단호했다. 추운 겨울에도 검은색 타이즈에 검정 치마를 입었고, 윗옷의 카라 위에는 항상 빳빳하게 풀 먹인 새하얀 면 카라를 부지런히 빨고 다시 붙여 달고 다녀야 했다.


하얀 카라의 왼쪽 끝에는 학년을 알리는 색의 배지를 붙였고, 입학 때 받은 학년 배지는 졸업할 때까지 달았다. 내가 받은 배지는 빨간색이었다. 2학년은 파란색, 3학년은 초록색. 빨강이 복도에서 파랑, 초록을 만나면 목례를 하고 지나갔다. 흰 카라의 오른쪽 끝에도 배지를 달고 다니는 학생들이 있는데, 해와 별이 겹친 모양의 특별한 배지이다. 이것을 달기 위해서는 중간고사와 학기말 고사 점수가 학년석차 상위 10% 안에 들어야 한다. 학년별 700명 정도였으니, 학년석차 70등 안에 들면 반 석차와 상관없이 받는다. 성적표가 나올 때 선생님들은 새롭게 ‘모범배지’를 달게 된 학생의 이름을 불러 ‘훈장’처럼 나누어주었고, 성적이 떨어진 학생은 배지를 빼어 들고 걸어 나와 선생님께 반납했다. 배지는 교실이나 운동장, 심지어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나는 상위 10% 성적 좋은 모범생이야!” 외치고 다니는 것 같았다.


하루는 담임선생님이 불렀다. 성적이 오르긴 했는데 아쉽다면서 조금만 더 하면 다음에는 ‘모범배지’를 달 수 있겠다며 “힘내라! 열심히 하자!” 하셨다. 그러나 나는 졸업할 때까지 매번 아슬아슬하게 배지를 놓쳤다. 내 흰 카라에는 영원히 하나의 구명밖에 없었다. 배지를 달고 있는 친구들의 빛나는 얼굴을 보고, 새로 임용되시는 선생님이나 교생들도 오자 마자 사랑해 주셨다. 나의 절친은 항상 양쪽 카라에 배지를 달았다. 부러웠다. 나는 친구들과 사이좋았고, 숙제도 잘해갔고, 글씨도 예쁘게 썼고, 책 읽기도 좋아하고, 규칙도 잘 지키고, 지각도 안 하는 모범생이었는데 모범배지를 달지 못했다. 성적 때문이었다. 아니, 수학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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