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

by 조은미

나는 딸 셋 중에서 맏딸이다. K 장녀라는 말도 있던데 사랑만 많이 받았지 나는 전혀 큰딸 답지 않았다. 나보다 4살 어린 둘째는, 내가 7살 어린 막내와 집에서 놀 때, 동네 개구쟁이들과 골목길을 누비고 다녔다. 용기와 의지는 둘째에게 있었다. 어쩌다 셋이 놀다 전쟁이 벌어지면 눈치 백 단 막내는 둘째 편에 붙었고, 나는 혼자 울면서도 마음은 편했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삶의 의지를 잃었던 우리 엄마는 딸 셋을 앉혀 놓고 "같이 죽자!"라고 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막내는 훌쩍였고, 둘째는 "안 죽는다, 못 죽겠다!" 울부짖었다. 둘째 덕에 다 살았다.

겁 많고 의지박약 한 내가 서른에 결혼을 했다. 서른하나부터 줄줄이 나를 엄마라 부르는 보물들을 낳았다. 세 아이를 잘 기르고픈 의지가 드디어 발동했다. 용감해지고 씩씩해지고 똑똑해져야 했다. 그렇게 최선을 다했다.


나이 드신 엄마는 세 딸의 집을 두루두루 다니며 지내셨다. 나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래 함께 살았다. 예순 중반에 심장 수술을 하고 20년 가까이 잘 버틴 엄마는 그 옛날의 젊은 과부가 아니었다. 스스로 꼬박꼬박 약을 먹으며 철저히 건강을 챙기셨다. 그러나 세상사에 관심 많던 엄마, 손주들의 배필 볼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엄마, 세상에서 딸 셋을 낳은 게 가장 잘한 일이라고 수도 없이 말하던 엄마가 손주들의 연이은 혼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병상에 누우셨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위중한 상태라는 주치의의 말을 듣고도 엄마는 삶을 향한 단단한 의지로 두 해를 더 버티셨다. 그리고... 마흔셋에 홀로 되신 엄마는 딱 그만큼 더 사시고 우리 곁을 정말 떠나셨다.


의지는 생물과 같아서 생기기도, 자라기도, 꺾이기도, 죽기도 한다. 의지로 되는 것이 있고, 의지로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성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