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시티
아들은 아내와 종종 한다는 보드게임을 함께 하자고 했다. 빈 시간이 나면 OTT 영화나 드라마를 보던 나와 남편은 그렇게 독일에서 생소한 보드게임 세계로 입문했다.
먼저 게임 규칙을 익히는 것부터 시작하고, 여러 번 지는 경험이 쌓이고 나서야 겨우 이기는 즐거움을 배웠다. 가장 늦은 밤까지 손을 놓지 못했던 게임은 '티츄'라는 4인 게임이다. 며느리는 스페인인답게 어찌나 열정적이던지 그동안 생활 속에서 못 보았던 리액션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왔다. 어려서부터 가족과 친척들과 게임을 자주 하며 자랐단다. 우리가 설날에 윷놀이를 즐기는 것처럼! "Life is life, game is game!"을 외치며 남편이며 시아버지, 시어머니 일절 봐주는 것 없이 승리로 돌진하는 며늘아이를 보는 게 나는 더 웃겼다.
아들은 아빠, 엄마가 둘이서 하면 좋을 거라고 '로스트 시티'라는 2인 게임도 가르쳐주었다. 제법 재미있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바로 남편과 보드게임을 시작했다. 굴러다니던 빈 노트 한 권을 정해서 매번 게임을 마치고 점수를 기록했다. 초반에는 역시 남편이 승승장구했다. 지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잠자리에서 눈을 감고 게임을 복기했다. 왜 자꾸 질까??? 그러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나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어? 어?" 놀라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고민 좀 했지." 하고 으쓱였다. 사실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른다. 어쨌듯 독일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훌쩍 지났는데도 여전히 남편과 게임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서 이렇게 둘이 보드게임을 하는 순간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가 말이야,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서 진짜 진짜 호호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을 때, 이렇게 게임하는 오늘이 추억이 되겠지??"
남편이 말했다.
"아니, 그때도 하고 있을 텐데... 무슨 추억??"
"진짜???? 그때도 하고 있을 거라고??"
........
어제, 딸아이가 손자를 데리고 와서 하루 종일 내가 해주는 밥 먹고 아기랑 놀다가 갔다. 노트북 옆에 빼곡히 채워진 남편과 나의 스코어를 적어놓은 공책을 보면서 혀를 찼다.
"아니, 아니 그렇게 재미있어요?? 아이고 이렇게 둘이 열심히 뭘 했으면 아주 아주 뭔 일을 냈겠는데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