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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카치카 Jan 13. 2022

34살 , 인생의 가장 비싼 생일 선물을 받았다.


Music 토이 - reset ( feat 이적)



34년 인생에 딱히 ‘운’이 따른다고 생각하며 살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매주 로또에  인생역전의 희망은 걸지 못한다.

그저 ‘노력한 만큼만이라도 얻자’라는 바람으로 산다.

일복이 많은 디자이너였다. 대신 인복도 많아서 8년이라는 시간을 잘 버텼다.


 2021년 6월, 여전히 코로나가 한창인 불안정한 고용 시장의 분위기 속에서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내가 일했던 곳은 소위 '대기업'이었다. 한때 대기업 입사가  목표였던 적이 있었고, 그 목표가 이뤄졌을 땐 앞으로의 인생은 큰 변화 없이 안정적으로 흐를 거라고 안심했다.

하지만 어느 날 모든 에너지를 잃은 체 불 꺼진 방 한가운데에 누워 천정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로  신체적, 정신적인 번아웃이 한꺼번에 다가왔다.  코로나로 불안한 미래보다 나에겐 보일듯한 미래가 더 무서웠다. 내년에도 쉴 틈 없이 프로젝트들을 끝내다 보면 어느새 일 년이 지나가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고 퇴근 후 쉼 없이 가졌던 자기 계발의 시간이 사실은 일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는 나의 발버둥이였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남다르게 큰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 퇴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더욱이 퇴사 후의 계획 따위도 없었다. 그저 퇴사가 선택지없는 유일한 답인 느낌이었다. 다행히 퇴사를 앞둔 나에겐 8년의 경력과  1년은 쉴 수 있는 돈이 통장에 있었다. 물론 내 기준으로.

스스로 생각했다. '퇴사'는 올해 내 생일선물이라고. 한국 소비 시장은 코로나 상황으로 명품의 소비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었고 '플렉스'라는 신조어가 유행이었다. 나는 명품 대신 34살의 생일 선물로  '퇴사'를 플렉스 했다. 돈으로 따져도 내 인생 가장 비싼 선물이었다.


그렇게 나는 퇴사를 하고 도망치듯 스페인으로 왔다. 스페인은 내 연인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백수의 나날은 날이 좋으면 나가서 볕 아래에서 뭐든 먹고 마신다. 해가질 때면 집 앞바다에 가서 석양을 본다. 매일 어떤 요리 해먹을지 고민하고, 무슨 책을 읽을지 어떤 영화를 볼지 리스트에 저장하며 하루의 일들을 일기장에 기록한다. 그저 기본적 욕구에 충실하며 단순한 고민들을 하며 사는 중이다.


디자이너였던지라 세상 모든 이쁜 것 들은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한다. 또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는 데서 보람을 얻는다. 나고 자란 곳이 아닌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하루들도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명분을 주기에 비교적 백수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이따금씩  ‘나 다시 일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직은 '어떻게든 흘러가겠지'하며 모른 체하기 일수이다. 대신 애써 살아온 그동안의 시간 동안 어딘가에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나’의 파편들을 다시금 찾아가는 시간으로 들로 채우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의 날들의 기록들이 미래의 나에게 선물 같은 시간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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