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크 지방은 바스크 스페인과 바스크 프랑스로 나누어져 있는데, 내가 사는 빌바오에서는 한 시간 반이면 금방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에 닿게 된다. 한국은 반도이지만 사실상 섬과 같으니, 나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국경을 넘나드는 일이 여전히 신기하다. 보이지 않는 국경을 넘는 순간 모든 표지판은 프랑스어로 바뀌고 핸드폰에선 프랑스 통신사로 변경되었다고 메시지가 온다.
바스크 프랑스는 바스크 스페인과 함께 바스크라는 하나의 이름아래에 있으면서 , 또 프랑스와 스페인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비슷함과 다름을 모두 가진 매력적인 곳이다.
스페인과의 다른 점을 느끼기 위해 이 가까운 프랑스에 종종 오곤 하는데, 바로 그 다른 점 중 하나가 오이스터이다. 스페인에서의 오이스터는 친근한 음식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이스터를 파는 곳을 흔하게 찾을 수도 없고, 가격 또한 꽤 비싼 편이다. 반면에 프랑스 국경만 넘으면 바닷가 근처로는 즐비하게 오이스터를 파는 음식점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재래시장에서도 흔히 찾을 수 있다. 당연히 가격도 스페인에 비하면 훨씬 저렴하다. 재래시장에 가서 개수로 주문하면 바로 껍질의 반을 열어 레몬이 올려진 접시에 담겨 와인 한잔과 함께 나온다. 그럼 우리는 해산물가게 한편에 마련된 바 테이블이나 혹은 시장 야외의 테이블석에서 먹을 수 있다.
어쨌든, 우리는 오늘도 오이스터를 먹으려 2시간을 달려왔다. 바닷가를 코앞에 둔 자리가 안 남아 있을까 초조한 마음으로 도착했는데 다행히 우리를 위한 딱 두 자리가 남겨져있다. 주문을 하면 금새 얼음이 담긴 쟁반에 올려진 굴과 그 옆에 레몬조각과 버터가 올려져 등장한다. 처음엔 도대체 이 버터를 굴과 어떻게 먹으라는 거지 싶어 주변을 힐끗 쳐다보았는데 그냥 같이 나온 빵에 다들 발라먹고 있었다. 얼음이 담긴 접시가 버터가 녹는 걸 방지하기 때문에 굴 접시 위에 올려져 같이 나오는 것뿐이었다.
프랑스의 굴은 우리나라의 굴보다 부드럽고 달큼한 맛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과도 너무 잘 어울린다. 바스크 지역이기 때문에 굴+차콜리의 세트 메뉴를 가진 곳도 많지만 나는 프랑스에 왔으니 프랑스 와인을 시키기를 선호한다. 굴과 샤블리 , 혹은 이번처럼 가을바람이 솔솔 부는 날에는 로제와인을 시킨다. 눈앞에는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는 코앞에서 찰랑거린다. 바다 앞에 놓인 와인잔이 비워져 가면 잔 안에는 바다가 다시 채워진다. 바다를 코앞에 두고 굴을 삼키니 마치 달큼한 바다를 입에 물고 있는 기분이 든다.
후후 룩 입안으로 들어온 달큼한 파도를 넘기고, 입안에 남은 마지막 바다의 향은 와인으로 씻어낸다.
함께 주문한 소라는 작은 나무 꼬지를 넣어 껍데기를 살살 돌려가며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모두 꺼내고자 애를 쓴다. 돌돌 감려나 온 소라에 마늘향이 가득한 버터 소스를 얹어 입안으로 넣는다.
이번엔 졸긴 한 소라가 씹히면서 버터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인류는 어떻게 이런 맛있는 것을 찾아낸 것이지라고 감탄한다. 기분은 좋을 수밖에 없다.
모든 생각이 내 입안의 굴과 소라에 사르르 녹아 사라져 지금의 순간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순간만큼은 어떤 시련을 지닌 날들일 지라도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내 인생 나쁘지 않은걸?이라고.
그래서 조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우리는 바다와 굴이 있는 프랑스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