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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Sep 06. 2015

나의 아버지

아빠를 떠올리면

아빠를 떠 올리면  먼저

따뜻함,,배려,자상함 멋짐  


한없이 떠오르는 추억하나

명절 이 다가오면 그 당시 귀하던 양주 몇 병을 멋들어지게 포장하시던 아빠

귀한 달력을 포장하시던 모습이 떠오르곤 합니다.

아마 그 시절에 아빠께 배웠나 봅니다

종이로 양주를 포장하는 방법과 돌돌 말아 달력을 포장하는 방법을요

대락시절부터 정구와 운동으로 다듬어진 멋진 아빠의 테니스 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기도요

항상 레이디 훨스트를 외치시던 예의 바르신 아빠위 모습,

외 할아버지와 실갱이를 하시면서도 바둑을 두시던 외할아버지와 아빠의 모습을 뵈며 나 역시 결혼하면 사위와 장인의 바둑두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외할머니와 이모님들을 자상히 챙기시던 아빠

외사촌 조카의 입덧이라고 국물까지 나르시던 우리 아빠의 모습에서 아마도 배려를 배웠나봅니다

교육이 아닌 삶 속에서요


늦게 결혼하신 엄마와 아빠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먼저였습니다

그 탓에 제가 철이 아주 늦게 들어버린 단점도 있지만.

항상 제게 3개국어는 해야한다.

여자는 항상 긴장을 하고 몸가짐새가 흐뜨러져서는 않된다

하시던 아빠

주말이면 꼭 온 가족을 끌고 어디론가 데리고 가시던 분이 셨습니다

시집간 첫 해 시어른의 생신상을 차리는 딸이 못내 불안하시고 걱정되셨는지 집앞에 노량진 수산시장의 호를 떠다 살짝 놓고 가셧던 그런 분이신 내 아빠가 가끔 한 없이 그립습니다





 첫 아이 태몽도 아빠가 제일 먼저 꾸어주셨습니다.

저 먼 광양의 신혼 집에 오셔서 화장실 청소한 상태를 보시곤 웃으시던 아빠.

다행히도 첫 해 음력 설에 오셨을때  맛은 둘째치고 제가 오일장에서 사다 놓은 독에 김장김치면 동치미까지..빈대떡까지 차려놓으신걸 맛나게 드시며 좋아라 하셨던 아버지.

참 희안하게도 큰 아이가 태어나서는 제 아빠를 빼닮았엇는데  크면서 눈매며 눈섭은 영락없는 외할아버지가 떠오르게 하는것을 보면,,또한 아빠와 같은 양띠라는 사실에 가끔식 저도 모르게 아빠를 더 떠올리곤 한답니다


아빠가 훌쩍 가버리신지  25년이 지났지만.

내 기억 속의 옅은 회색빛 여름 수트와 밤색 구두를 신고 밝게 웃으시던 멋장이 아빠의 모습은 마음깊이 각인되 있습니다

광양,센다이, 서울 ,미시건을 거쳐 다시 서울에  이르는 25년이 흘렀지만

제일 힘들땐 항상 아빠를 떠올립니다

그러곤 힘써 용기를 내어봅니다

아빠라면 이럴때 이러셨겟지 하면서요,

지금도 금방 은미야 하며 문을 열고 들어서실 것 같기도 하면서도,

어느 사이 아빠의 음성 조차 늧선 타인의 음성으로 느껴질지도 모를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시카고의 막내 이모부께 들었습니다

아빠가 결혼 전 미국 생활을 하실때 30개를 넘는 주를 여행하셨다구요

아빠를 닮은 큰 아이도 어쩌다보니 미국의 몇십 주를 혼자 여행한 시간이 생겼습니다

멋진 외할아버님은 못뵈었어도 ,아마도 저 하늘 나라에서 아빠가 지켜주시나 봅니다



엄마께 들릴때마다 요즈음은 감사드립니다

아빠 없는 25년을 잘 버텨주신 것 만으로도 충분히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큰아이 임신 5개월의 갑작스런 아빠의 임종과 아빠의 마지막 미소 띈모습이요.

아빠가 돌아 가시기 며칠 전

엄마의 말씀 한 마디가

"부흥회에서 그렇게 맑게 웃는 아빠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던"

아빠를 땅에 묻던 날은 뒤에 심은 소나무 위로 무지개가 걸려있었다는 것을 지금도 분명히 기억합니다

이다음에 아빠를 뵐때.

아빠가 원하셨던 멋진 딸로  웃을 수 있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용기내어 하루를 보내봅니다


아빠...사랑합니다


은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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