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추억 센다이

크리스차펠(2)

by emily

큰 아이가 5살, 막내가 2살에 건너간 일본

동쪽 센다이..

이른 아침 해가 뜨고 오후 4시가 되면 어두 컴컴해 지던 1996년 10월,

엔과 원은 차이가 익숙치 않던 초기에 슈퍼 장 보기 조차 고역이던 시절,

입이 짧았던 아이들이 왠일인지 히토메보레쌀에 푸욱 빠져 엄청나게 밥을 먹어대던,

그렇게 어설펐던 적응기에 만나진 교회가 크리스차펠이었다

막 기저귀를 띄고 어리둥절하던 2살짜리 눈뚱구러기 막내는 중이염이 와 버렸고,

난 어설픈 일어 단어를 수첩에 적어들곤 이비인후과로 달려가던 시절,

차분한 5살짜리 큰아이는 나름 혼자 티비를 켜놓고 일어를 배우던 시기였다.


학교 공부와 실험으로 늦은 귀가를 하던 아빠와 우리 셋은 거의 반대 생홀을 하다시피 할 정도의 치열한 시간들 속에서도 일요일이면 늦잠자는 아빠는 놔두곤 우리끼리 걸어서 교회학교로 먼저 가곤 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두 아이는 알게 모르게 일본교회의 교회학교 속에서 몸으로 일어와 그들 문화를 체험하고 성장했다.

지금은 돌아가신 스즈키 할아버지 선생님

몇 안되는 일본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 을 열심히 가르치시고 돌봐주시던 아이들에겐 최초의 선생님이 셨다.

가끔 조용히 미소지으시고 계시던 안경을 쓰신 작은 체구의 스즈키 선생님이 생각나곤 한다.


아이들은 그렇게 교회 안에서 일본인 형과 누나들 사이서 성장했다.

지금 그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일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생생한 기억속 나의 아이들의 교회학교였다.

일본의 문화 중에 시치고상의 예식이 있다.

즉, 3,5,7세가 되는 아이들에게 축복을 하는 행사이다.

그 행사때면 우리 아이들도 일본 아이들과 교회 속에서 항상 축복 기도를 해주시던 목사님과 여러 어르신들.

그 중에 스즈키 상을 포함 해 3분의 어르신들이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질 않지만

그 분들의 따스한 마음은 나와 아이들에게 지금도 남아 있다고 확신한다.

크리스마스 축제를 할 때면 아이들도 어김없이 연극을 했다.

열이 펄펄 오르면서도 복장을 갖추고 연극대사를 똑바로 외우던 아이들 모습에 거꾸로 은혜받던 시간이

지금도 내겐 또 다른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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