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이로의 뜻밖의 이사
2010년 옆지기와의 유럽화의에 참가하게 된 이유는 우리가족의 미국 이사결정 때문이었다
외국계회사에서는 가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미국 발령을 앞드고 독일 사장님께서는 나를 만나고자하셨던 것이었다
그렇게 진행된 2010년 여름의 여행은 뜻밖의 결과를 우리 가족에게 선사했다.
즉, 미국으로의 발령,
그것도 디트로이트부근의....
옆지기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마침 그 근처에 사는 그에게는 국민학교의 동창 ,나에겐 중학교 동창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디트로이트는 로보컵을 찍은 곳인데 무섭지 않을까하는 염려에...
그런저런 우여곡절을 뒤로하고 우리 가족은 용감히 40대의 마지막을 낯선설고 먼 미국으로 향하게 되어 버렸다.
그렇게해서 가게된 미시건주,디트로이트시에서 9번째 정류장..노바이(NOVI)
당시 한국 드라마중에서 노비라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던 탓에 노바이란 글자보단 노비라는 단어가 머리에 들어왔다.
당시 상황은 ,큰 아이는 대학교 1학년을 다니던 중이고, 막내는 고등학교 1학년 시기였다.
아시아도 아니고 4년의 계약 기간을 떨어져 지낼 수도 없이 ,또 외국계회사의 특성상, 가족의 이사는 당연한 것이었고,결국 일단 막내만 이삿짐에 넣어가고 큰 아이는 혼자 한 학기나 두 학기를 지내고 어학연수로 생각하고 뒤따라 오기로 결정을 했다.
추위를 타는 애들아빠의 재택근무가 반이라는 사실이 좀 거슬리기도 했지만. 까짓 내가 나가지 하는 생각으로 이삿짐을 정리하려는데. 애들아빠가 먼저 가고 한 달의 여유가 생겼지만..물건을 줄이라는 엄명을 하고 가신 터라 결국 내 20대의 전공 서적과 논문까지도 다 정리해버리고 앨범도 반으로 줄여버렸다.
가끔 이사가 필요한 이유는 신변정리인지도,,,,
아들만 둘이다.
둘째는 동적인 아이라 움직여야 숨을 쉬는 전형적인 사내아이였고, 딱히 공부만 고집하는 엄마가 아닌지라..빈 틈이 너무나 많았는데.
갑작스런 미국 이사에가장 당황 스럽던 상황은 막내에게 벌어진다.
즉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삿짐에 섞여 도착한 노바이의 고등학교문을 두들겨야하는 상황...
다행히 고1때 온 가족이 미국으로 간 친구가 마침 20분 거리에서 사업을 하고 잇었기에 참 많은 도움을 받았다
또 요즘은 네이버나 다음을 검색하면 먼저간 한인 분들의 천절이 넘치는 설명과 코멘트들이 가득했기에.
참 희한한 일은 나의 외가쪽 외사촌과,막내이모 외삼촌 두 분들이 이민가신 곳이 바로 옆 시카고라는 사실이 어쩌면 일본을 거쳐 귀국한 지 10해뒤 의 예상치 못한 해외 이사에 두려움을 줄일 수 있었던 부분일 것이다.
나에겐 남동생이 하나다
따라서 언니도 여동생도 없는 처지에 시카고의 외사촌 여동생은 나에겐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여동생인 것이다.
왜 고모와 이모는 차이가 날까?
왠지 고모는 무거운 느낌이고 이모는 실수를 해도 덮어줄것같은 온화함으로 다가오는 걸까?
했었는데 ,내 아이들 역시 그 곳에 있는 동안 이모라는 존재의 반가움이 정말 진하게 실감이 났었다는 사실,
또, 2002년 처음으로 미국을 갔던 추억 속이 시카고의 옆 동네로 이사를 갔다는것,
이것역시 필연인 것이더라는,,,
아무튼지..
먼저 간 애아빠가 친구와 아파트를 구했고 ,짐을 부치고 딱 한 달 뒤 우리가 출발을 했다.
아주 추운 2011년 1월에 .
도착하자마자 내 새 애마는 혼다였고,그 몇 해 동안 참 많이도 달렸다.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산업으로 한 때는 미국의 가장 번화한 도시였었으나, 대공황 이후 몰락한 무서운 도시로 ,낮에만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유명한 미시건 대학 옆의 9번째 정류장,노바이는
우리나라로 치면 분당쯤이랄까?
유학생활을 해 본 옆지기는 학교 주변은 싫고, 차라리 한참 뜨는 노바이로 권유한 것은 우리의 소중한 친구였다.
노바이엔 일본 사람도 ,인도 사람도,아랍사람들도 다양한 분포도를 보이는 새마을이었기에 참 다양한 문화와 접할 수 있었고,우리에게 친숙한 일본의 문화도 더불어 많이 낯설지 않은 첫 느낌이었다.
먼 장거리 이사 끝에 잘 아는 소중한 친구네가 잇다는 사실은 참 행복한 일이다.
도착한 날..친구와 친구 어머님 ,옆지기와 나와 막내와 일본 식당에서 뜨거운 우동과 초밥을 먹으며
친숙한 느낌의 첫 날이 그렇게 흘러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