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도예가 김은미
반 고흐, '영혼의 편지'
4년 전, 반 고흐의 그림 전시를 관람하게 되었는데 그림만 보았을 땐 붓터치가 특별하고 화려한 그림 정도로 평가했다.
그 후, 우연히 고흐가 힘들 때마다 동생에게 썼던 편지를 모아둔 책을 접했다. 생전에 한 장도 안 팔렸던 그 대작들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걸어온 걸까...
나는 읽는 내내 고흐로 '빙의'되어 그의 여정에 깊이 빠져들었고, 감정에 복받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의 편지는 120년 후의 관람가인 나에게 보내는 생생한 일기 같았고, 작가인 그와 나의 감정을 엮어주는 연결고리와 같았다.
여정의 기록
나는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도예가다. 누군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찾으라길래 어렵게 찾았다. 그런데, 이 열정을 이끌고 나가는 게 이렇게도 힘든 줄은 모르고 시작했다.
나의 선택에 핑계를 댈 수는 없다. 솔직히 정신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고흐만큼 힘든 건 아닌 것 같다. 이 세상에 나만 힘든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다. 어떤 여정을 거쳐왔는지,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는지 말이다.
이야기가 있는 오브제,
나에게 고흐의 그림이 그의 편지를 엿보고 나서야 더 큰 의미가 있었듯이, 내가 만든 화병과 그릇들이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오브제였으면 좋겠다. 이 화병은 김은미 도예가가 만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러한 스토리가 있더라...라고 두세 문장 꺼낼 수 있는 오브제. 그렇게 쓰는 이와 만든 이 가 마음으로 연결되었으면 한다.
Plus, 영국 생활 9년 차..
영국에 10년 가까이 사는 동안, 내 고집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진행해 나가면서 경험했던 신선하고 충격적인 일들, 소중하게 만난 인연들은 내 인생의 방향과 가치관을 바꿔 놓기도 했다. 놀라운 건 그때의 경험과 배움을 그 순간에 기록해 놓지 않았더니, 깨달음과 감사함은 금세 사라졌고 나는 탄성의 힘을 받은 것 마냥 다시 그저 그런 예전의 나로 돌아갔다. 그래서, 지금까지 기록하지 않았던 나의 경험담과 생각을 지금이라도 추적해 내 마음 안에 꼭 잡아 놓고 싶다.
*인스타그램: EunmiKimPott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