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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mi Kim Pottery Nov 01. 2017

브랜드와  나,      

Eunmi Kim Pottery


"어디서 왔어? 무엇이 너를 런던으로 오게 만들었니?"

Where are you from? What brought you here?


이 두 질문은 멀티 컬쳐럴 런던에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다.
만나는 이들로부터 수없이 듣던 질문이기에, 나는 수없이 같은 대답을 해야했다. '한국에서 왔고 수공예 도자기를 만든다.'라고 대답을 반복 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더 깊이 끊임없이 했다. 영국을 체험할 수록, 영국인들을 만날수록 오히려 나는 한국인임을 느낀다.



Reinterpreting the simple, earthy and unconstrained style of traditional Korean pottery for a contemporary and modern sensibility


단순한, 자연스러운, 구속받지 않는 한국(조선) 전통 도자기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 하여 지금 우리의 식탁과 리빙룸에 어울리를 식기와 오브제를 제작하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컨셉이다.나는 영국과 서유럽의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예술품과 도자기를 보면 볼수록, '한국의 미'에 비례적으로 관심을 가졌고, 우리의 것도 그들의 것 만큼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흔들리면 흔들린대로, 완벽하지 않으면 완벽하지 않은대로 비정형의 형태 그대로 마무리 짓는 달항아리와 조선 사발. 그 자유분방함의 미학은 다른 어느나라에는 없는 우리만의 특별한 미적 철학이었다.내가 영국풍 또는 북유럽풍의 도자기를 만든다는 것은 영국인인 척, 유럽인 인척 흉내 낼 뿐이다. 나도 모르게 내 작업에 스며든 스타일의 본바탕은 분명 한국에서 왔다. 내 손에 스며든 스타일이 잘 변하지를 않는다. 내 작업 스타일이 100% 한국 정통 도자기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시대 도공들이 추구했던 편안하고 잔잔하고 자연스러운 미학이 현대적인 느낌으로 새롭게 표현되길 바란다.







"너만의 이름이야. 그게 가장 특별하고 아름다워."

You have your own name. It is unique and beauutiful.


브랜드명과 로고를 정하는데 한달이 넘게 걸렸다. 결국 내 이름이었지만 결정하기까지 많이 고민했다. EUN으로 시작하는 영단어 자체가 없을 뿐더러 부르기 어려운 발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미킴으로 고집한 이유.

은미킴 로고, 손글씨 사인으로 수공예 느낌을 낸 Brand Identity



영국에 사는 처음 몇년 동안 영어이름을 지으려고 두세번 시도했다. 그 때마다 영국인 친구에게 들었던 피드백은 부모님이 지어준 네 고유의 이름이 있는데, 왜 흔한 영어이름을 지으려고 하냐는 것이다. "윤미? 움미?"라고 발음을 반복 연습하며 마지막엔 "운-미"라고 불러주었다.그렇다. 왜 우리는 그렇게도 우리를 서구화 하려고 하는 것일까? 왜 우리가 그들을 위해 우리를 바꿔야 하는 걸까? 소량생산 고퀄리티 프랑스 와인의 이름이 아무리 발음하기 어려워도 와인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어떻게든 그 와인 이름을 기억하고 발음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내 작업에 관심이 있고 내 작업을 좋아한다면 내 이름을 발음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내가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은 읽기 쉬운 브랜드명이 아니라 은미킴 그녀만의 고유한 이야기, 작업의 캐릭터와 퀄리티였다.

내 이름을 걸고 만든 도자기를 판매한다는 것은 그만큼 큰 책임감이 따른다. 잘못 만들었거나 대충 만든 아이템을 판매했을 경우에는 그 컴플레인이 어떠한 회사가 아니라 고스란히 나 자신에게 돌아 온다. 그렇게 나는 작업의 특별함과 퀄리티에 집중해야 하는 길고 긴 진짜 여정을 시작해 버렸다. 얼마나 힘든 여정인지도 모른채 말이다.







"네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

How do you pronounce your name?



"네 이름 어떻게 발음해? 유..윤미?" 내 작업을 보고 나와 마주친 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날 윤미라 부르는 이들이 더 많지만 발음이 틀리면 틀린대로 그냥 내버려둔다. 내 이름을 부르려고 노력해 준다는 자체가 감사하다. 100여명 가까이 되는 내 공동 작업실에서 2년을 보내고 나니 많은 아티스트들이 내 이름을 기억하고 비슷하게 불러준다. '윤미' 또는 '운미'로.








"킴? 혹시.. 너 한국인이야?"

Kim? Are you.. a Korean?


지난 연말 포토벨로 크리스마켓에서 만난 미국인 아저씨가 내 부스를 보고 건넨 말이다. "Well done! Awesome!" 부인이 도자기를 하는데, 내 도자기가 너무 맘에 드신단다. 한국에서 입양한 딸이 한명 있는데, 아트&디자인 스쿨에 막 입학했다고 한다. 집에 돌아가면 런던에서 한국인 도예가를 만났다고 부인과 딸한테 자랑해야 한다며 신나게 나와 함께 사진을 찍으셨고, 서포트 해주고 싶다며 여행중이신데도 무겁고 부피가 큰 나의 작업을 엄청 사가셨다. 꼭 성공하길 바란다는 마지막 멘트, 환한 미소와 함께. 12월 매우 추운 날씨에 6시간 째 밖에 서 있었는데, 이 분이 갑자기 천사처럼 나타나 얼어있던 나를 따뜻하게 녹여주셨다.








폴 스미스 와의 인연

With Paul Smith


Eunmi Kim & Paul Smith4년 전, 은미킴 로고를 디자인 할 때 폴스미스 손글씨 로고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런데 몇달 전 폴스미스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나는 폴스미스에 지지않을 정도로 장난꾸러기 임에도 그 분 앞에선 왜 그렇게 떨리고 작아지던지 개미 목소리로 "I am your big fan." 이 한마디를 겨우 할 수 있었다. 폴 자신도 3m x 3m 의 아주 작은 스튜디오에서 옷을 만들고 판매하기 시작했다며 나에게 용기를 듬뿍 주셨다. 머그컵 하나를 선물로 드렸더니 "Oh, I love it!!"이라고 너무 좋아하시면서 내 양볼에 뽀뽀하셨다. 70세가 넘는 할아버지 뻘 되는 분이 뽀뽀해 주시는데 왜이리 떨리던지. 4년 전 내 로고를 디자인 할 때 폴스미스를 직접 만날 거란 건 그저 거위의 꿈 이었는데, 며칠 후 폴이 나에게 감사의 표시로 보내온 카드와 작은 선물은 액자에 담아 가보로 남겨야겠다.

패션 브랜드 Paul Smith의 디자이너 Paul !!!     








은미킴 포터리, 고생이 달콤하게 느껴질 때 까지   

It is not about success but about the process.


도자기를 시작한지 이제 만 4년을 바라본다. 4년동안 퀄리티가 꽤 나아졌다. 모든게 쉽게 풀려서 4년을 버틸 수 있었던건 아니다. 한 때는 그만두고 싶은 충동이 한달에 한번 씩 폭발했다.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 하늘의 별따기인 도예 작업실 구하기, 사이즈 작은 가마, 혼자 들고 이동하기엔 무거운 아이템들, 수공예 그릇 시장의 한계성 등 어려운 산들을 넘고 넘어도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산이 다시 나타난다. 그런데 어느순간 이 힘든 시간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고생이 참 달콤하다. 잘 풀리지 않는 이 기간에 오히려 배울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은미킴이란 브랜드를 인내심, 끈질김, 겸손함, 강인함, 감사함으로 아주 천천히 촘촘하지만 탄탄하게 포장하고 있는 느낌이다. 언제부턴가 성공은 나의 목표가 아니다. 나는 그저 나만의 이야기와 그 진행 과정을 즐기고 있다.

런던 노팅힐 포토벨로 크리스마스 마켓 참가 이미지 / 2016


브랜드란 그렇게 탄생되고 성장하는 것 같다. 처음엔 꾸밈없는 진짜 나만의 이야기 한 줄로 시작하지만 방향성을 가지고 아주 천천히 아주 촘촘하게 써 나가는 것. 나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때고 걷기 시작한 지점이지만, 그렇게 한길을 꾸준히 걷다보면 순간 순간의 이야기들이 쌓여 그 브랜드의 역사로 바뀌는 지점이 올 것이라 믿는다.



* 인스타그램: eunmikimpottery



(이 글은 HAGO journel에 실린 내용입니다 / 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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