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머리로 걷는 것만 해도

by 고아함

동트기 전부터 매미가 울었다. ‘오늘도 무척 더운 날씨려나 보다.’ 잠이 덜 깬 어렴풋한 의식으로 몸을 뒤척이며 반대편으로 돌아누웠다. 순간 머릿속으로 검은 띠가 휘돌았다. ‘어, 뭐지?’ 개운치 않은 느낌으로 다시 반대편으로 누웠다. 역시 검은 어지럼이 횡 스쳤다. 일어나야 하는데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없다. 덩달아 속도 울렁, 토할 것 같다.


119구급차가 다급히 도착했다. 구급대원은 꼼짝없이 눈감고 고통스럽게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일으켜 부축해 신속히 이동 접이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긴박하게 현관문을 나섰고, 엘리베이터를 탔으며, 1층 자동 출입문을 나와 구급차에 실었다. 병원을 향해 차는 질주했다. 가는 중에 한 남성대원이 나의 증상을 다급히 물었고 여성 대원은 수시로 혈압을 재 차트에 기록했다.

어지럼증과 구토증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일어나 앉지는 못해도 의식은 또렷해 구급대원들의 움직임이 그대로 감지되었다. “삐용 삐용, 웽-” 긴급한 후송을 알리는 신호음이 연신 울렸고, 구급차는 평소 차량 통행이 많던 넓은 도로에 진입하는 듯했다. 달리던 차들이 긴급히 길을 비켜주고 모두 정차한 듯 정적이 흘렀다. 순간 두려웠다. 내 처지가 더욱 위중하게 느껴졌다.


“응급실 이쪽 출구로 차대는 게 빨라!” 한 남성이 다급히 운전자에게 말했다. 구급차는 속력을 다해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가장 가까운 C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구급요원과 병원 관계자의 긴박한 몇 마디가 급하게 오고 갔고 구급차의 침대보 그대로 들려 병원 이동침대로 옮겨졌다. 그리고 종종걸음 치는 발소리와 함께 응급실로 떠밀려 들어갔다.


구급대원에게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 되는데 그럴 겨를도 없었다. 대원들 또한 환자의 생사가 오고 가는 급박한 상황에 인사 같은 건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튼 사람들이 다급하게 움직이는 걸 보니 ‘이제 죽나’ 싶었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죽음이 가까이 왔다니…….’ 가슴이 써늘해졌다.


이어 간호사들이 내 침대로 와 혈압을 쟀고, 수액 주사를 손등에 꽂았으며, 채혈을 하고, 소변검사용 빈 종이컵도 침대 머리맡에 두고 갔다. 여전히 머리는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았다. 기운도 없었다. 몸을 움직이면 이상 증상이 더해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을 똑바로 하고 눈을 감고 있을 수밖에.


응급실 회진 의사 선생님이 와 증상을 묻고 몇 가지 테스트를 했다. “내 손가락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여 보세요, 손가락도 잡아보세요.” 나는 연약한 아기가 되어 병마의 구원자인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눈동자를 움직였고 손가락을 꼬옥 잡았다. 따뜻하고 편안했다. 이어 다리와 팔도 움직여 보라고 했고 심전도 검사기도 가지고 와 진찰을 했다. 정확한 병명을 찾아내기 위한 그의 노력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러다 신경과로 옮겨졌다. 그곳의 담당 의사 선생님도 몇 가지 테스트를 하더니 ‘이석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귀의 안쪽에서 몸의 균형을 담당하고 있는 전정기관의 이석(세포) 일부가 조각나 머리 회전을 감지해주는 세반 고리관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어지럼증이 유발됐다고 했다.

그래서 누웠다가 일어나거나 잠을 자다가 옆으로 돌아누울 때, 고개를 숙이고 들 때, 높은 곳을 보고 머리를 뒤로 젖힐 때 어지럼증이 느껴지며 구토, 식은땀도 나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진정된다고 했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왜 이런 병이 생기느냐 물으니 스트레스, 과로, 노화 때문이란다.


다시 응급실로 옮겨졌다. 내 침대 오른쪽에 누워 있던 젊은 애기 엄마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친정엄마와 통화하는 것 같았다. 애기가 토하지 않고 우유는 잘 먹었느냐, 잘 노느냐, 수액 주사를 꽂고 아픈 중에도 아기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장염과 신우염이라 입원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마음이 짠했다.


기운을 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핏자국이 낭자한 옷을 입고 있는 맞은편 침대의 아저씨가 보였다. ‘무슨 일로 저렇게 피가 나셨을까? 교통사고를 당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 옆 침대에 누우신 할아버지 곁의 할머니가 푸념을 하신다. 왜 자전거를 타고 나가 넘어져 이 난리냐고 할아버지를 나무라신다.


연신 환자를 돌보며 돌아다니던 한 간호사도 오늘은 응급 환자가 40여 명이나 된다고 분주함을 다른 간호사에게 토로한다. 내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여기저기서 간헐적으로 말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의사와 환자, 보호자, 간호사가 서로 나누는 대화였다.


어지럼증과 구토가 종전보다 진정되어 조심스럽게 걸을 수 있었다. 퇴원해도 된다고 해서 처방약을 받고 응급실 문을 나섰다. 동병상련이었을까. 여러 아픈 환자들에게는 먼저 퇴원하는 것이 미안했다. 그분들도 속히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진료비를 계산하러 원무과에 갔다. 40대 후반 남성 직원 분의 눈과 손이 컴퓨터 자판기와 모니터를 오가며 분주했다. 먼지가 켜켜이 끼어 있는 자판기에서 그의 바쁘고 고단한 일상이 그대로 엿보였다. 환자의 치료를 위해 움직이는 의료진들의 수고가 얼마나 분주한지 가감 없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일하는 수고가 돈으로 계산되어 보상되는 세상이지만, 여러 사람의 신속하고 투철한 직업 활동 덕분에 오늘 내가 살았다. 수고한 모든 분들이 고마웠다.


병원을 나와 하늘을 바라보았다. 흰 구름이 한가로이 떠가고 있었다. 더운 날씨지만 바람도 살랑 불었다. 더없이 고맙게 느껴지는 평화로운 하늘과 바람. 퇴원해 정신 차리고 걸을 수 있게 된 것이 무한 감사했다. 택시를 타지 않고 집을 향해 천천히 걸으며 건강하다는 것만으로도 평소 얼마나 감사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나도 예외가 아닌 119구급차 신세를 지고 나니 더욱 실감됐다.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살 때는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다 건강을 한순간 잃고 나니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이 진리로 다가왔다. 몸을 움직일 수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손으로 내 몸 하나 창조한 것 없으면서 내 몸 내가 지니고 산다고 생명의 신비가 흐르는 우주인 몸을 무관심하게 홀대했다. 그 결과 준엄한 경고로 병이 찾아왔다. 사람이 살며 가장 기본으로 무엇을 중시하고 살아야 하는지, 몸과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 병이었다. 그래서 무엇을 더 소유하려고도, 누리려고도 과한 욕심 품지 말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도 받지 말자고 스스로 약속했다.


‘몸에 해가 되는 생각과 행동을 하지 말며 단순하게 살자!’ 마음이 겸허해지고 가난해졌다. 머리 맑고 먹은 음식 소화 잘 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무더운 여름날 절실히 깨달았다.


아파보니 산다는 것이 돈이 다가 아니고 명예와 사회적 성취도 제일가는 가치는 아니었다. 어지럽지 않은 맑은 머리로 두 발 올곧게 세워 걸으며 하늘을 보고 바람을 쐬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사느냐 죽느냐를 체험해 보니 더욱 그랬다.

“삐용 삐용, 웽-” 지금도 119차는 질주한다. 사고, 질병, 죽음이 결코 나와 무관치 않다는 걸 일깨우면서…….

*커버/(하) 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