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천사가 되는 순간

by 고아함

여러 날 하염없이 눈이 내렸다. 나풀나풀 날리다 함박눈이 되어 거리는 금세 새하얀 눈 세상으로 변했다. 발이 푹푹 빠질 정도의 폭설이었다.


눈이 그치고 파란 하늘에 해가 떠오르자 쌓인 눈은 순백으로 반짝였다. 반짝반짝, 곱고 고운 눈 위에 발자국을 찍었다. 뽀드득뽀드득 청명한 소리. 아파트 쉼터 지붕 처마엔 고드름도 달렸다. 햇살이 투영되니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연못 둘레 길로 산책을 나갔다. 빛바랜 부들과 갈대, 수초 더미 위로 눈이 솜뭉치를 틀고, 얼음 언 연못 위를 새하얗게 덮었다. 까치와 비둘기, 참새가 연못 둘레의 나무 가로막과 가로수를 오르내리며 먹이를 찾아 눈을 헤집었다.


건강을 위해 유산소 운동으로 걸었다. 생각에 잠기며 세 바퀴를 걸었을까. 언뜻 아이들 몇이 연못가를 지나가는가 싶었는데, 어느 지점에선가 두 남자아이가 가로막에 서서 “하하” 웃으며 말했다.


“야! 너 거기 왜 들어갔어? 안 깊냐? ”


순간 화들짝 놀라 연못을 보았다. 앗! 한 아이가 빠졌다. 순간 가슴이 콩닥, 정신은 아찔, 혼비백산, 반사적으로 스마트폰을 눌렀다. 119 - 통화 중이었다.


‘이를 어째, 빨리 받아야 하는데’ 잠시 끊고 다시 걸었다. 드디어 연결 신호음,

“네- 11~”

상대편 말을 듣기도 전에

“연못에 아이가 빠졌어요. ○○동 행정복지센터 옆 연못이에요, 빨리 오세요!”

가슴이 떨렸다.


그리곤 다시 아이를 바라보았다. 초등학교 3, 4학년 정도 돼 보였다. 남자아이였다. 겨울 점퍼를 입고 허우적 대지 않고 물에 둥둥 떠있다.

“야! 기다려. 담임선생님한테 연락하고, 119에도 전화할게.”

좀 전의 두 남자아이가 연신 재미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태연히 키득거리며 물에 빠진 아이를 보고 말을 건넸다. 그리고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렸다. 그 때문일까, 아이는 물에 빠져 있으면서도 울고불고 공포에 떨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이 오히려 초조하여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물에 떠있는 아이를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수영을 하니 연못에 들어가 구할 수도 없고, 아이에게 던져줄 구명줄조차 당장 손에 없다.

난감함에 마음만 타들어가 구급대원이 빨리 와주길 바라는데 119 상황실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 상태가 어떠냐? 빨리 출동했지만 가는 시간이 걸리니 대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뭐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없겠느냐?


그렇다. 가장 가깝게 ‘행정복지센터!’ 뛰었다. 그렇게 얼마를 뛰다 맞은편에서 검은 줄 뭉치를 들고 달려오는 한 남자를 만났다. 순간 그 뭉치가 뭐냐고 뛰며 물었지만 그 사람이나 나나 대답하고 들을 경황이 없었다.


위급한 상황에 침착이란 꿈에 불과했다. 나는 나대로 행정복지센터 창구로 뛰어가 헉헉대며 직원에게 도움을 구했고, 창구 직원은 그렇잖아도 119에서 전화가 와 연못 담당 직원이 금 나갔다고 했다. 아까 마주친 그분? 다시 연못가로 황급히 뛰었다.


그 사이 119구급차는 두 대 도착했고 한 대원이 구명줄을 들고 연못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안도감과 함께 맥이 탁 풀렸다. 얼음 깨진 연못물에 떠있는 아이와 물이 가슴까지 차오른 구급대원을 보는 일도 가슴 조마조마했다. 아이도 구급대원도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아저씨 왜 이제야 오세요? 춥고 무서웠어요.”

그제야 아이는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철없는 행동을 했지만 침착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제 괜찮아, 아저씨가 구해 줄게. 이 줄 잡아.”

아이와 근접한 곳에서 대원은 구명줄을 던졌다. 아이는 시키는 대로 줄을 잡았고, 대원은 아이를 안심시키며 더 가까이 다가가 아이를 꼬옥 껴안았다. 감동의 한 장면이었다. 눈물까지 나오는…….

‘아, 이제 살았구나!’ 안도의 숨이 나왔다. 아이는 연못 밖으로 옮겨져 담요로 몸이 감싸였고 구급차에 태워졌다. 혹시 모를 저체온증 진료를 위해 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구급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인근 병원으로 달렸다. 아이가 찬 연못물에 떠 있던 시간은 30분 이내, 사느냐 죽느냐가 걸린 골든타임이었다.

아이는 호기심에 진입금지 표시도 무시하고 빙판에 올라섰나 보다. 날씨도 춥고 눈도 많이 내렸으니 얼음이 꽝꽝 얼었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러나 기온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해빙기였으므로 얼음은 얇고 깨져 연못물에 빠졌을 테고, 그나마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은 건, 아이가 수영을 조금 할 줄 알았거나 공기층 있는 겨울 점퍼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무 탈 없이 아이가 퇴원하길 바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현시대는 물질만능주의에 선의가 악용되고, 권모술수의 사기, 이권을 숨긴 정의, 이기주의가 만연하여 사람에게 함부로 선(善)을 베푸는 것도 조심스러운 시대라고 한다.

그럼에도 가끔 사람을 위해 천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선행을 종종 TV 뉴스로 본다.


길가다 갑자기 쓰러진 이를 심폐소생술로 살렸다는 어린 소녀부터 교통사고로 차에 치인 사람을 구하기 위해 행인들이 힘을 합쳐 차를 들어 올렸다는 얘기. 달리던 차에서 내려 터널 안에서 사고 난 차량 문을 부수고 들어가 어린이를 구한 일, 모두가 잠든 새벽에 화재가 난 것을 알리려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다 유명을 달리한 의인, 해마다 불우이웃을 도우라고 거액을 몰래 두고 간다는 사람까지.


어두운 소식이 주를 이루는 세상이지만 천사 역할을 한 이들의 미담이 무관심이 현명한 처사라는 인식을 무색하게 하며 감동을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아직은 우리 사회가 살 만하다고, 희망이 있다고…….


그러고 보면 일일이 우리 눈에 보이진 않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 천사가 소임을 다 하고 있 아직 이 사회가, 이 나라가 존속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을 위해 천사가 될 땐 자의든, 직업이든, 돈의 대가가 매개든 내면의 선한 마음이 열려 주저 없이 자신이 수 있는 일을 행동으로 옮길 때다.


많든 적든 어떤 형태로든 이모저모로 서로 도와야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어떤 때는 내가 천사가 되어주어야 할 때도 있고, 내가 위험에 처할 땐 그 누군가가 천사가 되어주어야 산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천사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과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순간을 예외 없이 직면하며 살고 있다.

우리가 생사의 기로나 위기에 처할 때, 날개 달린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도와주길 바라나 그런 천사는 인간의 육안으로 볼 수 있게 내려오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의 마음을 선하게 움직여 천사 역할을 하도록 이끌어 생명을 살리기도, 위기를 극복하게도 한다.

*사진-고아함*

**커버 이미지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