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

아이패드 드로잉

by Eunmi Lee

봄비가 오던 날, 그래서 비 오는 장면을 그리고 싶었다. 핀터레스트로 이미지 검색을 하는데, 이게 뭐라고 고르고 또 고른 이미지가 이 사진이다. 그림을 그릴 때도, 그릴 사진을 고를 때도 즐겁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안 봤다는 것이 찔린다. 그림을 그렸으니 언젠가 봐야겠다. 다들 보는데, 안 본 영화가 꽤 있다. 나는 조금 연식이 된 사람이니까, 그 기준으로 적어보자면 <공동경비구역 JSA>도 <쉬리>도 <친구>도 안 봤다. <엽기적인 그녀>도 안 봤네. 요즘 <기생충>은 절반쯤 보다 중단했다. 영화를 꽤 보던 시절에도 1000만 관객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영화는 보려고 애쓰지 않았다. 내가 봤던 영화가 천만 영화가 되기도 하지만, 많이 본다고 내가 보고 싶어지는 건 아니더라. 끌리는 장르가 아니어서일 때도 있고, 다들 보니까 나도 봐야지라는 마음은 더 멀리했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영화가 극장에 걸린다. 물론 아주 뒤늦게 그 영화를 보면 대체로 좋다. 나의 이상하고 마이너한 기질일 뿐이다.

이제는 영화를 잘 보지 않게 됐다. 항상 세트 구성인 아이들이 생기면서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다 보니 더 영화를 보지 않게 됐다. 그 시간에 다른 걸 하는 게 더 좋다. 틀어 놓고 보면서 뭔가를 하지도 못한다. 전환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노래 들으면서 책을 보거나 공부하는 것도 안된다. 영화를 싫어한다는 말이 아니다. 보는 걸 시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번 보고 빠져들면 누구도 못 말린다.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봤다 하면 드라마든 영화든 밤을 꼴딱 새우며 정주행 하는 타입이다. 좋은 장면과 이미지로 마음을 촉촉하고 몽글하게 만드는 매력도 있고, 그림으로도 남기고 싶고 여운이 길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8월이 되기 전에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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