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소중해

고래 사진을 보며 시작된 이야기

by Eunmi Lee

아침에 고래 사진을 봤다.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드넓은 바다 어디든 헤엄쳐 갈 수 있는 고래들.


대부분의 포유류는 사회적 동물이다. 수족관의 고래들은 자연에서 고래의 평균수명보다 많아도 절반을 채 살지 못 한다. 우울증, 반복적인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나도 돈을 내고 수족관에 갔다. 여수 아쿠아플라넷의 벨루가는 세 마리였다. 지금은 혼자 남아있다.


그들이 돌아가더라도 바다는 녹록치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아무것도 없는 단독 수조는 너무 가혹하다. 새하얀 독방에 혼자 갇혀있는 꼴이다.


“바다의 대형동물들은 육지의 대형동물들에 비해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의 피해를 상대적으로 덜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종이 산업재해와 인간의 해양자원 남용 탓에 멸종의 기로에 서 있다. 사태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면, 고래, 상어, 참치, 돌고래는 디프로토돈, 땅나무늘보, 매머드의 선례를 따라 망각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세상의 대형동물 중 인간이 초래한 대홍수에서 살아남는 것은 오직 인간 자신과 노아의 방주에서 노예선의 노잡이들로 노동하는 가축들뿐일 것이다.”<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유발 하라리의 문장은 충격적이었다. 인간이라는 홍수 속에서, 살아남을 동물들에 대한 글이다. 아주 오랜 시간.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이후 수십만 년의 시간 동안 인류는 끝없이 다른 동물들을 멸종시키며, 여기까지 왔다. 심지어 사촌 격인 다른 호모 종들도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멸종된 것이라 말한다. 물론 수십만 년 전의 확실한 증거는 없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작은 차이로 끝없이 서로를 죽여왔고, 과거는 더 잔인한 시대였다. 유럽의 제국들은 신대륙을 식민지화하며 그곳의 원주민을 몰아냈다. 영국은 1800년대 태즈메이니아섬을 식민지화하였고, 그곳의 원주민인 태즈매니아인은 결국 모두 사라졌다. 가까운 역사를 보며,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그런 일들을 상상해 볼 수 있게 된다.


나는 우리의 선량함을 믿는다. 내 주변의 착하고 다정한 사람들을 보면 세상은 아름답고, 따뜻하다. 나의 주변만 본다면 그저 행복한 지금을 만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 속의, 세계 속의 우리는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폭력이 존재하는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희망적인 것은 점점 더 폭력은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우리는 내 몫의 삶을 사는 거라고, 나는 소중하다는 외침이 범람하는 시절. 그 외침이 전혀 닿지않는 변방의 너에게도 그런 때가 오기를 바란다. 그게 동물이든 사람이든 간에.


매거진의 이전글버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