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에서 출발한 의식의 흐름
버섯은 과거 식물이라 생각했지만, 요즘은 오히려 동물에 가깝게 분류 된다. 버섯의 정체는 균사체. 그러니까 균류. 곰팡이다. 푸르딩딩한 곰팡이가 어떻게 덩어리를 지어 이렇게 쫜득한 버섯이 되는지 신비롭다. 아무튼 그 탱탱한 식감과 단백질의 보고라는 점도 버섯의 정체성을 보여 주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땅속에는 나무 뿌리와 뿌리가 있다. 그리고 그 뿌리 사이에는 셀 수 없을 균사체가 자리한다. 우리가 해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식물도 의사소통을 한다고 한다. 그들만의 네트워크가 존재한다는 것이 실제로 밝혀지고 있다. 여전히 해석할 수는 없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영화 <아바타>의 신성한 나무가 단순히 허구로 그치지 않게 된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이지만, 어쩌면 영화 속 그러한 방식으로 나무들, 식물들은 그만의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우리의 기준으로 본다면 너무 느린 속도로 말이다.
흙 1 티스푼을 뜨면 그 안에는 1km가 넘는 균사체가 들어있다. 결국 흙 어디에나 균사체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버섯이 그 균사체라고 본다면 버섯 역시 어디에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런 발상에서 출발한 것 같은 그림책이 있다. 오하루 작가의 <버섯 소녀>다. 작가님의 그림을 너무 좋아해서 소장하고 있는데, 역시나 아름답다. 이런 기회에 소개하고 싶다. 소장가치 뿜뿜이다.
흙 속의 중금속을 잘 흡수하는 것이 있다면, 그 또한 버섯이다. 그래서 종종 버섯에서는 농약이나 중금속 함유량 문제가 기사화된다. 얼마 전 읽은 김초엽의 <행성어서점>에는 오염된 지구에 사는 버섯 인간들이 등장한다. 피부 곳곳에 버섯이 피어난 인류. 글로만 읽어도 그 기괴한 모습을 떠올리면, 김초엽 작가의 아름다운 글과는 다른 어떤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 버섯은 인체에 고통을 주지만, 또한 버섯의 알 수 없는 해독작용으로 특정 인간 개체는 극심한 오염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행성어서점>에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균사체의 집단지성을 보여주는 소설 또한 등장한다.
인문학이란 이런 게 아닐까. 어떤 지식은 이토록 아름답게 예술로 승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