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 솔로 20년 차, 이제는 혼자 하는 모든 것이 익숙하다.
혼자서 밥도 잘 챙겨 먹고, 혼자서 맛집을 찾아다니고, 학교 수업도 잘 듣는다.
어느 토요일 오후 3시쯤, 전부터 네이버 지도에 저장해 두고 꼭 한 번 먹어 보려고 했던 규카츠를 먹기 위해
대충 목 늘어난 반팔 티와 재수할 때 즐겨 입었던 추리닝 바지와 롱패딩을 입고,
네이버 지도를 열심히 보며 환승하고, 도보로 12분 정도 걸어서 규카츠 집에 도착했다.
일부러 식사 시간을 피해 애매한 시간에 왔는데도 주말이라 사람이 너무 많았고, 결국 가게 앞에 서서 웨이팅을 했다.
핸드폰으로 쇼츠를 막 보다 더 이상 볼 게 없어졌을 때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멍때리다가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규카츠 집 앞에서 웨이팅하는 사람들은 나 빼고는 모두 커플이라는 것.
저마다 꼭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괜히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내내 스스로 열심히 흔들었던 주머니 속의 핫팩을 꽉 한 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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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하신 블루하와이랑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드릴게요.“
“너 진짜 연애 안 할 거야? 이제 연애할 때도 되지 않았어? 아, 마침 얼마 전에 아는 애가 여소해달라고 했는데 그때 딱 네가 떠올랐었는데. 소개 받아볼래? 어때?”
“음… 연애? 하고 싶나…?”
“근데 뭐, 너는 워낙 혼자서도 잘 지내니까. 척척 다 잘하고.”
“ㅎㅎㅎ…”
그런데 그 순간, 며칠 전 내가 꽉 쥐었었던 핫팩의 감촉이 떠올랐다.
“아니, 나 연애하고 싶어. 소개받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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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연애가 시작된 후, 분명 내 빗과 롱패딩의 지퍼와 가방은 나한테 서운해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들을 직접 만지는 일이 줄었기에.
너는 내가 20분 동안 고데기로 머리를 세팅하고 가도 항상 귀엽다며 헝클이다가, 다시금 머리를 정리해 주며 ‘이쁘다’라는 말을 붙였고,
내가 겨울의 바람을 춥다고 느끼기도 전에 친히 쭈그려서, 저 밑에 있는 지퍼를 잡아 턱 밑까지 지퍼를 올려주었으며,
무엇보다 내가 어떤 가방을 들고 나가든 그 가방을 드는 건 너의 몫이었다.
“안녕! 오느라 힘들었지.”
“아냐 네가 더 힘들었을 것 같은데. 가방 이리 줘. 들어줄게.”
“무거울 텐데… 고마워.”
너에게만은 완벽해 보이고 싶어서 가방에 쑤셔 넣은 파우치와 판고데기 때문에 가방은 무거웠지만, 너는 내색 없이 기꺼이 들어주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방을 들어준 사람은 우리 아빠 말고는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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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왜 좋아?”
“잘생겼고, 무엇보다 너무 잘해줘서.”
“근데 남자 친구면 이 정도는 다 해주지 않아?”
“에이, 아니야. 나는 네가 맨날 내 가방을 들어줘서 너무 좋아. 그게 진짜 고마워.”
너는 그 뒤로도 지하철역의 출구에서 만날 때마다 매번 내 가방을 들어주었다.
내 얼굴이 웃음을 짓고 있는지 찡그리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너는 그날 내가 들고 온 가방을 확인하고는, 곧장 가져가 자기 어깨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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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적당히 해야지. 내가 술 마시러 가면 중간중간 연락해 달라고 몇 번을 말했어. 기다리는 나는 조금도 생각 안 하지? 이제 나 안 사랑해?“
“아니…”
“근데 이것도 못 해줘? 내가 어려운 거 바란 건 아니잖아.”
“…”
“나 집 갈게. 집 가서 생각 좀 해볼게.”
뒤를 돌아 발걸음을 떼려던 순간, 네가 내 옷깃을 붙잡으며 말했다.
“… 줘.”
“뭐라고?”
“가방 줘. 내가 가방 들어줄게…”
“아니, 오늘은 가방 안 무거워. 내가 들 수 있어. 그리고 나 집 갈 거라니까?”
“그래도… 가방 들어주면… 네가 좋아하잖아.”
“정말… 정말로 네가 가방 들어줘서 내가 널 좋아한 거 같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사실 그때 네가 붙잡았던 것은 내 옷깃이 아닌 내가 매고 간 가방의 끈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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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문제였을까. 언제부터 나는 다시 가방을 스스로 들고 다니게 된 걸까.
이 세상에서 가방까지 들어주는 스윗한 남자는 너뿐이라 믿었던, 전직 모태 솔로의 착각이 깨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는 너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이 사라져 기껏해야 틴트 한 개가 들어있는 납작해진 가방이, 더 이상 너에게 맡길 필요도 없게 가벼워졌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나를 놓지 못하던 네가, 사실은 내 가방만 끈질기게 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