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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리’를 경험한 세 사람의 시선에서 쓰였다.
같은 ‘우리’ 속에서 누군가는 기대었고, 누군가는 만들어냈으며,
지금의 누군가는, 그 ‘우리’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
1
우리는 강력했다
‘우리’는 우리들을 끈끈하게 해주는 단어였다. ‘우리’에게는 뭐든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중학교 때 나에게 ‘우리’는 같이 놀고, 같이 재미있는 것들을 하는 동갑내기 친구들 무리였다.
내가 생각했던 ‘우리’는 그렇게 따뜻한 것이었다. ‘우리’가 즐겁기 위해서는, ‘우리’를 위해서는,
나 하나를 기꺼이 바쳐도 아깝지 않았다. ‘우리’는 나에게 그렇게 강력한 언어였다.
우리를 원했다
나는 ‘우리’에 특히나 약한 존재였다.
자존감이 낮았던 나는, 누가 자신의 ‘우리’에 넣어준다고 하면 곧장 달려갈 기세였다. 기꺼이. 언제든지.
그들이 나를 ‘우리’에 넣어주면, 그다음은 내가 보답할 차례였다.
시간, 돈, 마음까지 무엇이든 준비가 되어있었다. 상대와 나의 관계가 아직은 가깝지 않아도,
나와 감정적인 유대가 얕아도, 여의치 않았다. 나랑 어떤 관계이든 간에 말이다.
중학교 때의 나는 그랬다.
우리에 갇혔다
그들은 ‘우리’라는 달콤한 언어로 나를 그들의 ‘우리’에 포함했고, 난 ‘우리’에 홀려 그들에게 종속되었다.
나는 그렇게, 강력한 ‘우리’의 힘에 철저히 이용당했다. 우리를 위한 결과로는, 우리로서 얻은 것은, 없다.
우리가 유일하게 나에게 준 것은, 오직 배신감. 배신감뿐이었다.
그들은 ‘우리’라는 말로 나를 유혹하고는, 나의 진심을 앗아갔다.
우리를 거부하다
우리… 우리… 듣기만 해도 어쩐지 낯설고 오글거린다.
이제는 ‘너‘와 ‘나’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게 닿는다. 꼭 ‘우리’여야만 할까. ‘우리’로서 함께 해야만 할까. 그렇게 의미 있는 경험을 만들어내야 하는 걸까.
우리는 가짜다
아직도 사람들은 ‘우리’가 가진 따뜻한 속성으로 나를 유혹한다.
그렇지만 그 따뜻함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우리’는 순진한 이들을 심리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단어일 뿐이다.
우리는 없다
‘우리’라는 단어를 거부하겠다. 나는 혼자 할 수 있다
‘우리’라는 우리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싶지도, 공동체의 미학을 알고 싶지도, 깨달음을 얻고 싶지도 않다. 나는 급기야 우리로서의 경험이 없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우리를 의심하다
나에게 ‘우리’란 의심의 대상이다. 아니,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내 온 경험들이 ‘우리’는 무서운 단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는, 어른이 된 나는, 나랑 가깝지 않은 사람들이 그들과 나를 ‘우리’라는 단어로 묶어버린다면,
나는 곧바로 머릿속의 사이렌을 울리고, 셔터를 내려버린다.
벌써, 나에게 ‘우리’라는 수식어를 붙이다니.
천만에, 나를 당신들의 ‘우리’에 종속시키려는 거지? 속이 다 보인다. 난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나를 당신들의 ‘우리’에 넣어준 것에 고마움을 느끼지도 않으며, 무장해제 되지도 않는다.
더 이상 나의 일부분을 도려내서, ‘우리’에게 바치고 싶지 않다.
너는 너로, 나는 나로,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2
우리가 좋았다
우리… 우…리…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였다.
개인주의가 심한 요즘 세상에서, 우리라는 말은
바닥에 쏟아서 제각각 흩어져 버린 작은 콩들을, 크게 떠서 다시 한군데로 모아주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따뜻했다
‘우리’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우리 집, 우리 가족, 우리 학교, 우리 반…
내가 좋아하는 ‘우리’들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도 ‘우리’였다.
그래서 나는 ‘우리’를 자주 외치고 다녔다.
우리를 만들었다
나는 그렇게 ‘우리’를 만들고 다녔다. 학기 초, 친구들과 친해질 때 자주 입 밖으로 ‘우리’를 내뱉었다.
나에게 한껏 낯을 가리던 친구도, 내 ‘우리’ 한 마디에 어깨에 들어가 있는 힘을 풀고 미소를 짓곤 했으니까. 내가 ‘우리’를 건네고, 상대가 미소를 짓는 순간, ‘우리’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강력했다
난 그렇게 ‘우리'의 힘을 빨리 체감했다. 중학교 2학년 때쯤, 제법 이른 때였다.
나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항상 ‘우리’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사람을 무장해제 시킬 수 있는 단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나는 더 많은 ‘우리’를 만들고 다녔다. 그리고 나만의 스킬이 되었다.
‘우리’는 그들이 나를 좋아해 줄, 나에게 마음을 활짝 열게 해줄 무기였다.
우리는 떠났다
사람들은 내 ‘우리’를 듣고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나에게 잘해주었다.
나는 어떠한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본인들의 시간과 돈, 하다 하다 진심까지도
나에게 마구 주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나쁘진 않았다. 내가 건넨 한 단어에 많은 것을 받았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하나둘씩 나를 떠나기 시작했다.
우리를 잃었다
그들은 내게 잔뜩 주고는, 잔뜩 실망하며 나를 떠났다.
그들은 내가 배신자라는 말까지 덧붙이고, 갔다.
아니다. ‘우리’ 중 배신당한 건 나뿐이다. 나는 그 정도를 바란 적이 없다….
나는 단지 친해지고 싶어서 ‘우리’를 만들었다. 그저 ‘우리’라고 말 한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이렇게 많은 것을 바꾸어 놓을 줄은 몰랐다.
우리는 오해였다
그들이 딱 내가 바라는 정도로만 ‘우리’를 여겼더라면, ‘우리’의 존재에는 아무런 위협도
가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억울함이었을까….
내 ‘우리’를 왜곡해서 받아들인 건 그들이었는데, 무엇 때문에 남겨지게 되는 것은 나인지.
우리가 아팠다
그 이후로는 양껏 소심해졌다. ‘우리’가 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단어인지,
신중에 신중을 가해서 내뱉어야 할 단어인지 몰랐다.
나는 그저 ‘우리’가 ‘우리’임을 느끼고, 같이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사이가 되기를 바란 것뿐이었는데.
내가… 상처를 주었다. 내 ‘우리’가 상처를 주었다.
우리를 삼키다
이제는, 어른이 된 나는, ‘우리’라고 말하기가 무서워졌다.
큰 용기를 내어 말을 해보아도 “우리 같이 하자.”가 아닌, “내가 할 건데, 너도 할래?” 정도의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내 온 경험들이, 내가 ‘우리’라는 단어를 내뱉는 것에 반대표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입에서 양껏 머무르던,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려다가도,
곧바로 다시 원래의 뱃속으로 돌아가는,
‘우리’는 그런 단어가 되었다.
3
우리는 상처다
그렇게, 우리에게 상처만 남기고 ‘우리’는 떠났다.
언제부터 ‘우리’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언어가 된 것일까.
이쯤 되면 ‘우리’의 의견도 들어봐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라는 언어가 문제였을까? 아니면 미성숙하게 ‘우리’를 해석한 우리의 잘못이었을까.
‘우리’는 그냥 만들어져서 존재하게 된 것밖에 없다. 언어는 잘못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따뜻함의 속성을 부여한 것도 ‘우리'였고, 그에 모든 걸 바친 것도 ‘우리’였다.
우리는 우리다
‘우리’는 각자 다른 상처를 받았지만, 모두 ‘우리’로 존재함으로써 상처받았다는 점만은 같다.
‘우리’의 따뜻함에 자신의 것들을 바치던 1도, ‘우리'의 따뜻함으로 ‘우리’를 만들어내던 2도,
이 글을 쓰는 3도, 이 글을 읽는 4도. ‘우리’ 모두.
우리는 다르다
‘우리’의 따뜻한 매력에 홀려 ‘우리’를 빠르게 형성한 것은 ‘우리’들의 공통점이었지만,
‘우리’는 동상이몽의 관계에 있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원하는 바가 각자 달랐다.
애초에 ‘우리’라고 묶었던 일이 너무나 터무니없는 것이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섣부른 ‘우리’였을까. 어떠한 책임도 지지 못한 채 ‘우리’는, ‘우리’에게, 상처로만 남았다.
우리를 버리다
그렇게 ‘우리’를 잔뜩 사랑했다가, ‘우리’를 힘껏 내치게 되었다.
‘우리’가 붕괴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채워줄 수 없음을 아마 암묵적으로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변하다
혼자가 편한 지금의 ‘우리’들은, 원래 그러도록 태어난 존재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로 존재하면서 경험했던 기대, 표현, 실망, 배신… 그 수많은 감정에 지쳐
결국 ‘우리’를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하나의 ‘우리’는, 그렇게 또 ‘우리’의 선택으로 붕괴하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