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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Jun 16. 2022

우리네 삶의 존재 이유

토요 글쓰기 모임 [끄적이는 소모임] #4

22.06.13




삶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의 정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기에. 그런데 왜 인류는 아주 오래된 역사의 첫 순간부터 이 질문에 답을 찾아 헤맸을까?



생각해 보면 내가 또래보다 조숙하다고 느꼈던 중학생 시절부터 나는 항상 궁금했다. 인간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이 기나긴 역사는 생겨나게 된 것이며 그 출발점은 어디이고, 어떻게 해서 사상과 철학이라는 게 존재하게 된 것일까. 어떻게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게 되었으며, 각 개인의 목표가 아닌 인류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이 있는가. 왜 인간은 자손을 낳고 기를 수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인류는 복제되는 것일까. 자석의 극과 극이 붙는 것처럼 인류의 자손 번식도 물리적인 어쩔 수 없음일까.



고등학생이 되어 이러한 고민은 수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이러한 질문을 다양한 학문과 함께 확장시켜나가는 것이 철학이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갈증 났던 것은 원체 이 물음의 답이 아닌, 그 당시 한 사람의 존재로서, 자신의 생명 하나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면 올. 바. 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궁금해했으므로 그 거대한 철학에까지 빠져들 자신은 없었다.



그러다가 내가 유학을 떠나 그 먼 이국의 땅에서 나랑 같은 고민을 하는 학생을 만났고 우리는 금세 일주일에 한 번 만나 삶에 대하여, 생명에 대하여, 취미에 대하여, 바다에 대하여, 커피에 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사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언어 교환이 목적이었지만 우리는 막상 생각을 교환하는 것에 의의를 느꼈고, 각자의 언어로 거대한 태평양 앞에서 아무도 이해 못 할 개인적인 사상에 대해 떠벌렸다. 내가 지금 꺼내는 모든 말들이 젊은이 특유의 허황되고 허풍스러움이 아닌, 오랫동안 내 안에 유영하던 질의라는 것을 상대방이 온전하게 믿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거다.



이윽고 졸업한 지 한참 된 내가 한국으로 귀환한다는 게 정해지고 마지막으로 그 도시로 여행을 갔을 때 나는 그 친구와 오랜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옛 시절과 같은 태평양을 낀 해변 위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서로는 마음속에 정제되지 않은 생각들을 꺼냈다.


그때 끝없이 반복되는 파도를 바라보며 삶의 존재 이유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각자 나름의 답에 나름의 근거를 들며 이야기를 했지만 첫 문단에서 말한 것과 같이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저 한 사람이 인생의 매 순간 매시기를 지날 때마다 질문에 대한 답은 달라지고 성장해나가고 확장해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 당시의 나는 삶의 존재 이유에 대해 뭐라고 떠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때 신이란 있는가, 창조주는 있는가에 대해 잠깐 의문스럽게 말했던 것만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현재 그 시기로부터 몇 년이 더 지난 후의 지금의 나는 어떤 답을 꺼내놓을까. 물론, 바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정신없는 한 청년으로서 그 시간이 지나고 위와 같은 생각을 자문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지금에서야 다시 생각해 보면 그래, 현재 지금의 나로서는, 어찌 되었든 자연의 신비 안에서 우연치 않은 인류라는 종이 탄생하고 의식이 있고 언어가 있고 역사가 있고 기술이 있으며 그 모든 것은 욕(慾)으로부터 진화되었다고 느껴진다. 그러므로 아직까진 생명의 존재 이유, 인류의 존재 이유를 번식과 사회규범으로 꼽을 것 같다.


여기까지는 크게 보았을 때이고 작게, 개인의, 한 사람으로서의 삶의 존재 이유란 각자의 가치관에 따른 목표 달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꿈과 희망까지는 아니지만 인간은 별을 보는 존재라고도 하지 않는가. 내가 걸어갈 앞선 한 발자국을 지향하며 떠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운명론자가 아닌데도 운명을 믿고 있다. 모든 것은 다 정해져 있고 생물은 그 순리를 따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은 이 모든 걸 벗어날 힘이 있다고 믿는다. 깨뜨리고 싶다면 깨뜨리면 되는 것이다. 부딪히고 싶다면 부딪히면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흘러갈 것은 흘러가고 남아있을 것은 남아있는 그 인류 역사 안에서 각자의 가치관에 따른 목표를 하나하나 이뤄가며 살고 죽고 걸어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쓴 글을 읽으며 난 생명이나 우주, 철학과 같은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지 않은 사람인데 이 거대한 주제에 대해 글로써 나의 생각을 쓸 자격이 있을까도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자문 없이 살아가는 사람 자체가 한없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살아있으니까 살아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인생을 방황하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나는 내 삶의 길이 있다고 믿으며 또한 내가 지금 생각하는 삶의 존재 이유를 믿으며 시간과 발맞춰 걸어갈 것이다.


현재로서는 5년 뒤의 내가, 10년 뒤의 내가 어떤 답을 내릴지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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