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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Sep 14. 2022

사진,

토요 글쓰기 모임 [끄적이는 소모임] #6

22.09.13





나는 언제부터 사진을 좋아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중학생 때의 일이다.

중학생 때 나는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한 화질의 폴더폰으로 집 근처 공원에 자주 사진을 찍으러 갔었다. 분명 난 그때도 내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사진을 배운 적도 없고, 사진을 많이 접한 것도 아니면서 내가 좋아하는 구도, 좋아하는 색감, 좋아하는 분위기가 존재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는 나의 말에, 살면서 한두 번 뵙기만 한 먼 친척 삼촌께서는 내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 캐논 카메라를 선물로 사주셨다. 내 첫 디지털카메라였다. 나는 그 카메라를 가지고 학교 사진부에 들어 축제기간 동안 학교에서 사진전을 열였고, 친구들과 영상제작 동아리를 만들어 교내 상을 소소하게 타기도 했다. 봄이면 벚꽃나무 아래서, 또 가끔은 체험학습 날, 체육대회 날.. 그렇게나 내 렌즈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화질만 좋고 다른 건 다 우스웠던 사진들. 그렇지만 그 사진 속 풍경들이 기억에 생생하다. 소란스런 학창 시절이 고대로 사진 안에 담겨있다.



고삼이 될 무렵에는 글을 좋아하니까 국문과 반, 카메라를 좋아하니까 방송학과 반으로 대학에 지원하여 결론적으로 난 정말 방송학과에 다니게 되었다. 카메라가 손에 익을 무렵이다. 타국에서 타국의 친구들과 이질적인 언어로 같은 것을 배웠다.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고 소위 말하는 ‘재능’이 있는 친구들도 만나게 되며 내가 원하는 사진의 모양새가 달라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때 즈음, 방학이라 오랜만에 들어온 한국의 집에서 아주 낯선 카메라를 만나게 되었다. 아빠의 필름 카메라였다. 그전까지는 필름을 사용해본 적이 없기에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잔뜩이었던 것 같다. 나는 여름 방학 내내 필름 카메라를 손에 쥐고 다녔다. 그래서 나의 첫 필름은 여름 더위가 무더 나오는 그 해 여름. 우리 가족, 우리 집, 엄마랑 처음으로 둘이 떠났던 서울여행, 집 뒤의 작은 산, 버스 안, 장맛비, 풀잎 가득, 햇빛 가득.



운명처럼 나는 그 해에 암실수업을 듣게 되었다.

필름은 찍을수록 점점 더 좋아졌다. 새로운 걸 알게 될수록 더 빠져가는 게 꼭 첫사랑 같았다. 여태껏 만졌던 디지털카메라보다 특별했다. 현상할 때는 꼭 어렵고 아리송할 때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다양한 조절들이 만나 이루어지는 섬세한 순간이 좋았다. 나는 암실에서 밤을 새기도 했고, 다양한 바다를 찍기 위해 (그 당시 과제 주제가 ‘바다’였다) 혼자 카메라만 들고 훌쩍 떠나기도 했다. 아마 밖에 나갈 때마다 필름을 챙기는 지금의 습관은 그때부터 이어져왔나 보다.



내 생각이 담긴 사진이 한 장 두장 쌓이면서 수많은 나를 지나쳐갔다. 그것이 나의 역사다, 기억이다, 추억이다. 지나온 과거를 부르는 말이 다양하지만 필름은 아마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말일 거다, 적어도 나에게는.



나는 현재, 카메라를 처음 만진지는 십 년, 필름 카메라를 다룬지는 육 년이 된다. 나는 지금도 사진전을 보면 감탄하고, 소셜미디어에서 만난 다른 이의 사진을 보면 질투한다. 자주 사진은 무엇일까 고심하기도 하고,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셔터를 누르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아주 간혹 가다 계속 보고 싶은 나의 사진을 만나기도 한다.

그냥 나는 그렇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사진의 내 취미이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사진을 좋아한다.







(커버 사진은 2016년 여름, 나의 첫 롤의 첫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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