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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Sep 14. 2022

첫 취업과 첫 퇴직

첫 장래희망부터 첫 취업까지 걸린 시간은 9년.

그러나 첫 취업부터 첫 퇴직까지는 두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열일곱 살, 그때의 나는 소설을 좋아했다. 읽는 것보다도 쓰는 걸 더 좋아했다. 당시의 담임선생님께 진로상담을 받을 때도 나는 말했다.


"소설작가가 되고 싶어요."

"왜? 소설을 좋아하니?"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쓰는 걸 더 좋아해요."


그 말에 곤란한 듯 표정을 지으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희망진로란에 쓰기엔 너무 막연한 꿈이네."


납득할 수 없었다. 이보다 구체적인 꿈은 없다고 생각했다. 당장 쓰고 싶고, 쓰고 있는 소설이 스무 편이 넘는데, 이런 내가 소설작가가 되고 싶다는 게 이상한가?


나의 이런 의문은 다음 순간 곧바로 해소됐다.


"지금까지는 네가 소설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진로로 써도 됐지. 하지만 이제 고등학생이 됐잖아? 고등학생은 대학생이 되어야 해. 대학생이 되면 취업을 해야 하고. 취업을 하기 위해 어떤 대학교의 어떤 학과를 가야 할지, 그럼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 지금부터 부지런히 생각해야 해."

"네에..."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입시 준비를 할 거야. 그럼 가고 싶은 대학교의 가고 싶은 학과에 자기소개서를 쓰겠지? 그럴 때 '나는 무슨 직업을 갖고 싶어서 이런 노력을 했고, 이 대학교에 들어가서 이런 노력을 하고 싶어요'라고 쓰면, 어때 자기소개서가 술술 써지겠지?"


그리고 쐐기.


"글쓰는 건 취미로 해도 충분해. 지금은 미래를 생각해야지."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취업이 곧 미래였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선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필수였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대학 입시를 위해 고등학교를 다녔다. 마치 대학교에 가지 않으면 인생 패배자가 될 것처럼. 대학교를 졸업해야만 취업할 수 있는 것처럼. 무조건 취업만이 인생의 정답인 것처럼.


자기소개서를 쓰려면 구체적인 진로가 필요하다는 말로 단번에 납득했다. 그래서 결정한 나의 희망진로가 바로 '출판편집자'였다.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글을 마음껏 읽을 수 있고, 취업을 한다면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18시 정규수업이 모두 끝나자마자 10분 정도의 진로상담을 받았고, 상담이 끝난 후엔 석식을 먹으며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19시 반 야간자율학습에 들어가기 전 교무실로 달려가 '구체적인 희망진로'를 정했노라며 담임선생님께 공표했다. 친구들과 수다 떨며 노는 시간을 감안하면 진로를 정하는데 한 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공식적인 나의 꿈, 출판편집자. 공란이었던 희망진로란을 하나 더 채워낼 수 있게 돼 좋아하는 담임선생님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 어때. 나는 어차피 작가가 될 거니까 괜찮아.'


그 믿음 하나로 지난 9년을 살아왔다.


열일곱, 출판편집자가 되기 위해, 그에 맞춰 (사실 아무 대학교의)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하기 위해 모든 진로활동을 맞췄다. 스물, 그렇게 목표로 삼았던 국어국문학과생이 되어 훗날 출판편집자로 취업하기 좋아보인 학보사 기자로 들어갔다. 스물셋, 학보사 편집국장으로 임기를 마침과 동시에 그동안 쓰고 싶었던 소설을 마음껏 쓰고 싶어 2년간 휴학을 결정했다. 스물다섯, 휴학이 끝나고 현대문학전공 국어국문학사로 졸업했다.


그리고 스물여섯, 그토록 바랐던 출판사에 입사했다. 단지, 편집자가 아닌 마케터로 입사했다는 것이 의아한 포인트라고나 할까. 그때서야 알았다. 나는 출판편집자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마냥 출판사에 다니고 싶었던 것이라고.


'언젠가라도 나는 작가가 될 거야. 그러기 위해서 출판사에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라도 좋아.'


순진한 나는 이 믿음에 묶여 9년을 살았다. 이 얼마나 책임감 없는 자신감이었을까. 가엾은 꿈이었고 속 없는 낭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9년 동안 바랐던 취업으로부터 두 달만에 도망쳐 나온 이유가.










대학을 졸업하고 약 6개월 간 구직활동을 하던 중, 한 출판사에서 온라인 마케터 지원 제안을 받았다. 출판편집자가 되고 싶다고 자기소개서를 적었는데, 그걸 보고도 온라인 마케터로 제안하다니.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자잘한 디자인 경력이 있었다. 학보사에서 신문을 직접 편집했어야 했으므로 인디자인과 포토샵을 배웠고, 정적인 신문 편집 능력을 보다 더 개발하고 싶어 디자이너 패키지 수업을 들었다. 그때 더불어 일러스트와 프리미어를 배웠고, 그 덕분에 알음알음 카드뉴스 제작 일을 받아 아주 가끔이었지만 용돈벌이를 했었다.


처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썼던 그때의 요령 없던 나는 출판편집자가 되고 싶다면서 이력서에는 그 얕고 넓은 디자인 경력을 기술했던 것이었다. 때문에 이전에도 몇몇 회사에서 디자인 업무로 지원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다 드디어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물론 면접 제의도 아니고, 스카웃 제의도 아닌 지원 제의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 의미 없을 터였다. 괜찮아 보이는 불특정 다수의 지원자들에게 마구마구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아니겠는가(사실 잘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출판편집자가 되고 싶다고 써내려간 자기소개서를 과감하게 삭제하고 곧장 마케터용 자기소개서를 새로 써나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딱 두 가지를 꼽으라면,


하나, 지원을 제의한 출판사가 꽤나 장르소설 계에서는 손가락 안에 드는 메이저 출판사였고,

하나, 편집자가 되지 못하는 것보다 출판사에 입사하지 못하는 게 더 큰 불안이었다.


구직활동 중 가장 경계해야 하는 감정이 바로 이 '불안감'이다. 이력서를 100개 기업에 넣어서 10개 기업에서 연락이 올까말까 하다고 아무리 구직자에게 말해도 막상 이력서를 50개 기업에 넣어서 하나도 연락이 오지 않으면 구직자의 자존감은 한없이 곤두박질 친다. 몇 날 며칠을 공들여 쓴 내 이력서가 그 어디서도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때, 내가 자신 있게 자랑한 경험이 그저그런 경험이 되고 이제와서 다른 스펙을 쌓기에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기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것 같을 때. 이럴 때의 불안감은 목표와 현실 사이에서 타협하게 만든다.


편집자로 진로를 정하고 직업을 쟁취하기 위해 달려왔지만 막상 취업의 문턱 앞에서 나는 나 자신이 편집자가 되기에 적당한 인재가 아니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되고 싶다는 막연한 욕심만 가지고는 어떤 것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구직활동을 시작하고서야 알게 된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즈음의 나는 편집자가 되기 위해 어떤 걸 더 하면 되는지 찾는 것보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아무 출판사에나 취업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우선이었다. 나는 취업이 보장된 학과도 나오지 않았고, 군대도 가지 않는 여자였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동안 휴학했으므로 또래들보다 늦게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인데, 그에 비해 월등하게 매력적인 스펙을 쌓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취업이 잘 되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그래서 날 받아준 출판사에 너무 많이 감사함을 느꼈다. 편집자만 바라보고 산 내 이력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줬으니까. 내가 맡은 직무는 온라인 마케터였다. 각종 SNS를 활용해 제품을 홍보하는 일. 주로 인스타그램 콘텐츠 제작이 주 업무였고, 점점 페이스북과 유튜브, 심지어 틱톡까지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었다.


오히려 좋았다. 이런 업무라면, 이런 온라인 마케터라면 향후 경력을 훌륭하고 현명하게 쌓을 것을 생각했을 때, 내가 맡은 기획이 출판사의 브랜드가 되고, 곧 '나만의 브랜드'를 창출할 수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고, 원래부터도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생각을 하길 즐겨 소설작가가 되고 싶은 건데 온라인 마케터의 일도 다르지 않겠구나, 오히려 내가 최종적으로 되고 싶은 소설작가의 길에 밑거름이 되어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출판사의 온라인 마케터가 됐다. 아니, 됐었다. 취업과 동시에 가진 돈을 모두 털어 파주 출판단지 근처에 1년짜리 자취방을 구하고, 퇴근 후에도 노트북만 쳐다보며 콘텐츠 디자인을 구상했다. 심지어는 주말에 본가에 가있을 때마저도 온정신이 다음주에 마감해야 하는 콘텐츠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그정도로 열정적이었던 나였다.


하지만 나는 말했다.


"저... 그만 두겠습니다."

"왜요?"


수습도 떼지 않은 신입사원의 퇴사 선언에 당시의 과장님은 '왜'를 물었다. 그 단순한 하나의 질문에 떠오른 이유가 너무 많아서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의 이야기를 구구절절히 말하기엔... 퇴사하겠다는 내 말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웃음을 애써 참던 과장님의 표정이 너무 큰 상처가 됐기 때문이었다.


예상하셨구나, 과장님은. 어쩌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나의 퇴사를.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생각했고, 또 생각한다. 상사이기도 하고, 사수이기도 했던 그때의 과장님은 나를 짐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면접 때 하고 싶은 콘텐츠가 너무 많아서 설레고 흥분되는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던, 디자인 전공도 아니었고 디자인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던 그 구직자를 그 열정 하나만으로 입사시켰더니만 인스타그램 콘텐츠도 못 만들어, 그럴 듯한 기획도 못 짜, 기획안을 짜는 성의도 보여주지 않아. 이런 0의 신입을 100으로 만들 바엔 1이라도 가진 사람을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당연한 말이지만) 그 어떤 인수인계 기간이나 유예 기간 없이 그날 바로 퇴사가 결정됐다.


"오늘 바로 그만 두도록 해요.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아무도 나를 혼내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았다. 유일하게 마음을 줬던 3년 선배만이 갑작스레 일을 버린 내게 어이가 없다며 화를 냈을 뿐 누구도 나를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게 퇴사의 가장 첫 번째 이유였다. 나는 이 회사에 속하지 않는구나.


처음부터 그랬다. 첫 출근날, 꿈에 그리던 출판단지에 입성하는 날, 안내 받은 대로 출판사에 찾아갔다. 크지 않은 사무실을 너무 크다고 느끼게 만들 정도로 없는 인원에 띄엄띄엄 놓인 책상들과 성벽처럼 쌓아올린 파티션. 그래서 처음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아무도 보이지 않아 대뜸 "안녕하세요!"를 외쳤다. 그럼 오늘 신입사원이 출근한다는 걸 아는 누군가가 날 반겨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녕하세요!"를 3번 더 외칠 동안에도, 슬금슬금 안으로 들어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누군가를 향해 인사를 했을 때도 웬 잡상인이 들어왔다는 경계의 눈빛만 받을 뿐이었다. 잠시 뒤 이 출판사의 가장 막내로 보인 누군가가 나와 내 자리를 안내해주지 않았다면 취업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에 곧장 집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때 집으로 돌아갔어야 했을지도... 출근한지 한 시간 뒤쯤 면접을 봤던 과장님과 첫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10명도 안 되는 출판사 직원들과 돌아가며 인사를 했고, 가장 마지막에 행정 담당 과장님을 만나 근로계약서를 받았다. 읽어보고 (인)란에 빠짐없이 사인을 하라고 했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드디어 내가 정식으로 멋진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을 한아름 안고 계약서를 읽기 시작했다.


'포괄임금제 근로계약서'. 퇴사의 두 번째 이유였다.





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퇴사한 날 자취방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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