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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Oct 24. 2022

96년생이 겪은 MZ시대의 딜레마

내가 직접 말하긴 그렇지만, 90년대생 중에서도 후발주자들은 격동의 시대에 태어난 전사들이지 않나 싶다. 20세기 말에 태어나 21세기를 살아가는, 마치 태어난 곳은 서울인데 자라난 환경은 경기도라서 고향이 어디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애매한 나의 친구들. 그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전사였던가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꿈과 진로'가 아니었을까?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유난히 애매한 세대라고 생각한 순간은 바로 내가 중학교 3학년이었을 때다. 바야흐로 2011년, 학생인권조례가 막 시행되어 자리를 잡아나간 시기였다. 가장 큰 변화는 머리 스타일에 있었다. 이전까지는 남자던 여자던 모두 정해진 길이 넘어서는 머리를 길게 기를 수 없었다. 기껏 해봐야 튀지 않을 정도로만 손댄 파마 정도? 그건 없던 반곱슬이라고 우길 수라도 있었으니까. 오로지 아이돌 연습생이나 체육 특기생 등의 친구들만 머리를 길러도 봐주곤 했다. 그러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면서 모두 다 하나 같이 하고 싶었던 머리 스타일에 도전하게 됐다. 그래 봤자 염색은 여전히 엄두도 못 냈고, 단발머리에 까까머리들이었으니 처음엔 다들 소심하게 고데기며 헤어젤로 가르마 방향을 바꾸는 정도만으로 만족했었더랬다.


그즈음부터 학생들이 '학생답게', '청소년답게', '청춘스럽게' 살 수 있도록 학교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특히 창의적 재량 수업이 붐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무조건 수능의, 수능을 위한, 수능에 의한 틀에 박히고도 전진적이기만 했던 교육방식을 타파하자는 움직임. 그 움직임은 내가 고등학생이 되자 거의 혁명이라도 일으키는 것마냥 교육과 문화를 바꾸고 나아가 삶 전체를 바꿨다.


"얘들아, 수능이 너네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아. 너희도 알지? 줄 세우기 식의 교육방식을 따르는 건 꿈이 없는 뒤떨어진 애들에게 남겨진 최후의 보루 같은 거야. 그러니까 우리 꿈을 찾자. 알았지?"


수능의 기를 죽인 학교는 반대로 내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학생들에게 할당되는 모든 시간과 공간을 학생기록부를 채우기 위한 이벤트로 꾸몄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이었던 동아리 활동도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어야 했고, 정규 수업이 끝나고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기까지의 공백을 방과후창의적재량수업이라는, '재량'이었지만 결코 선택할 수는 없었던 수업으로 채워야만 했다.


그때는 세상이 참 잘 돌아가고 있구나라며 기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리, 버디버디와 싸이월드로 세상을 배우던 우리 세대에 유명한 문구가 있지 않은가.


'학생이라는 죄로,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같은 과목을 같은 시간에 같은 수준으로 공부'당하며' 오로지 수능이라는 하나의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눈 가린 경주마처럼 앞만 내달리던 삶이었다. 부모의 강요에, 스스로의 자격지심에, 남들과의 경쟁에 지치고 지치다 삶을 떠나는 선배들과 친구들이 많지 않았던가. 그때의 공부는 그저 무찔러야 하는 빌런이었고, 창의적 수업들이 꿰차기 시작한 시간표는 숨 쉴 구멍이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학교는 결국 아무것도 포기하지 못했다. 대학교에 더 많은 학생들을 입학시키라는 방침이 오랫동안 유지되다 대뜸 창의적인 인재를 만드는 교육을 하라고 하면 그 누가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겠는가. 결국 창의적재량수업은 정규수업에 대한 보충수업으로 변질됐고, 대학에 가서 창의적 인재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 야간자율학습을 버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학교는 '창의성'과 '꿈'을 나눠서 생각할 수 없었지 않았나. 꿈이 있는 학생들이 창의적인 학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의 인생의 청사진을 능동적으로 그릴 줄 아는 학생들 말이다. 고등학교를 보낸 3년 동안 겪었던 수많은 교육청 주최 대회들의 이름에서 '창의'와 '진로'라는 단어가 나란히 포함된 모습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게 그 이유다. 지금도 많은 교육 프로그램에서 창의적 진로 개발이란 말을 쓰고 있지 않은가.


창의적인 인재가 되어라. 그러기 위해선 꿈을 가져라. 그리고 꿈을 마음껏 펼치는 미래를 위한 수업을 들어라.


'꿈'. 꿈이란 창의적 진로 개발을 한 단어로 압축한 아주 훌륭한 표어가 아닌가. 수능보다 내신, 살아가는 모든 순간순간을 학생기록부에 담아야 했던 지난날. 그때의 우리는 담임과의 진로상담에서 '넌 꿈이 뭐니?'라는 질문을 받고, 대답하지 못했을 때의 부끄러움을 잊지 못한다. 꿈이 없으면 낙오자가 됐다. 왜? 꿈이 곧 학생기록부이고, 내신이자, 대학이었고, 미래였으니까.


아주 무서운 협박을 당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수명이 자그마치 100년이라면서 아직 그에 5분의 1도 살지 않은 아이들에게 꿈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면서, 대학교와 전공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전공과목을 살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제대로 꿈을 찾아. 꿈이 없는 학생은 가난한 것보다 더 불쌍하니까.


그래서 나는 소설작가라는 꿈이 있던 나를 사랑했다. 누구보다 뚜렷한 꿈을 누구보다 일찍 가져 언제가 됐든 꿈을 이룰 가능성만 생각하며 낙관적이었던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꿈을 찾지 못해 허덕이는 친구들 속에서 이미 꿈을 가진 것만으로도 남들의 몇 배는 앞서 나가고 있다고 자신만만했다. 남들이 꿈을 찾는 시간에 나는 벌써 꿈에 나아가기 위해 학생기록부를 빠르게 채워나갔으니 자랑스럽지 않고는 못 배겼다. 결정적으로 나는 내가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대대손손 이름을 떨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불쌍하지 않아. 집안이 가난해도, 내가 돈이 없어도 괜찮아. 꿈이 있으면 된다고 했어. 꿈만 있으면 나는 어디서도 당당해.


엄청난 자기애로 똘똘 뭉친 나의 껍질을 겹겹이 까이니 결국 내겐 '꿈만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불쌍했다. 너무 불쌍해서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집안이 가난해도, 내게 돈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아도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긴 적이 없었는데, 지금의 나를 건설해낸 '꿈'이라는 작은 줄기가, 뿌리는커녕 이파리 하나 펴지 못한 이 빈약한 줄기가 너무 불쌍했다.


그렇다고 내가 '꿈'을 찾아 쫓으라고 강조했던 기성세대들을 원망하는가? 그렇다면 조금만 더 늦게, 지금의 시대에 맞춰 태어났다면 나는 불쌍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과연.


MZ세대들은, 지금의 시대는 무언가를 싫어해도 마음껏 싫어할 수 있다고 했다. 좋은 미래를 꿈꾸는 것보다 지금의 삶에 충실하며 당장의 행복을 추구하는 세상이라고 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 좋고 싫고가 절대적인 기준이 된 세상이라고.


없었던 직업들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이제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나를 희생하지 않는다. 오로지 나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더 크기 때문에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상사를 욕하고,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회사를 때려치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말할 때 얻는 관심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줄 때가 잦기도 하다.


싫어하는 것을 감내하지 마. 좋아하는 것만 해도 모자란 게 시간이야. 어차피 널 이해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아파하지 마.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 해도 오늘 행복하면 돼. 오늘, 지금 당장.


당차다. MZ의 시대는 그렇다. 그래서 난 오히려 자신이 없다. '꿈'을 찾으라던 어른들을 향해 '꿈'이 없으면 어떻냐고 반격하는 아이들. 그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진 96년생의 나는 무섭다. 꿈이 없는 나를 마주하는 것도, 꿈을 이루지 못하는 나를 마주하는 것도. 꿈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초라한 나의 알맹이를 인정하는 것이.


내 존재의 가치가, 어떤 세계를 나만의 세계관과 이를 표현할 손가락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꿈꾸던 꿈이고 바라던 미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인정하길 미뤄서는 안 됐다. 소설작가가 꿈이었다면 나의 존재의 가치는 그 '어떤 세계'였어야 했다. 세계를 만들며 행복하게 웃는 내 모습이 아니라 행복하게 웃으며 구축했어야 했을 '그 세계'. 나는 그 세계를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내 꿈의 실현가능성을 증명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내겐 꿈을 포기할 용기가 필요했다. 지금까지의 꿈을 포기할 용기가.


그럼 자, 다시. 내게 꿈이 없으면 나는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


"그러니까, 돈."


꾸기만 하는 꿈은 일어나면 사라진다. 차라리 해몽이라도 해야 기대라도 되지. (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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