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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Oct 13. 2022

가난은 내게 여유를 주지 않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첫 취업 전에는 '꿈을 위해 살았다'고 말하고 다녔다. 오로지 내가 소설작가가 되는 미래를 꿈꾸며,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 녹아있는 출판인으로서의 어느 날을 꿈꾸며 살았다,고 말이다.


'꿈을 위해 살았다'라. 그 말의 어폐를 첫 퇴직 후에야 깨달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았던 게 아니라 꿈을 '꾸기만' 했던 삶이었다는 것을.


내 인생의 오류를 직면하고 다시금 지난 삶을 회상했다. 제대로 바라보며 나는 지금껏 무엇을 위해 살았던가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돈을 벌기 위해서만' 살았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했다. 많은 돈을 벌지 않아도,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갖고 싶은 것을 사지 않아도 적당히 숨을 쉬면서, 적당히 굶주리지만 않으면서, 그 적당한 나날들을 특별한 상상과 창작으로 채워나가는 삶이 내게 이상적인 삶이라고, 한평생 그런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어리석은 착각이었고, 불쌍한 자기위안이었다.


스무살이 된 직후부터 가족들로부터 그 어떤 원조를 받지 않았다는 건 내게 자랑이었다. 당신의 삶만으로도 벅찬 나의 부모에게 20년 간의 짐을 하나라도 내려놓게 만들어드렸다는 것 말이다. 0에서 시작할 나의 삶을 얼마나 많은 숫자로 채워나갈 수 있는지가 오롯이 내 손발에 달려있다는 사실이 나 스스로 아주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용돈을 벌기 위해 주말 알바를 시작했고, 조금씩이라도 적금을 만들고 싶어서 학교에서도 일을 했다. 학교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니 자취를 했고, 자취를 위해 알바를 늘렸다.


평일, 주말, 주간, 야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기만 했으니 꿈은커녕 취미를 가질 시간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잠을 자기 바빴고, 잠을 자고도 남는 짬에는 나의 짬이 나기를 몸소 기다려준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당연하게도 그렇게 3년 동안 살다보니 꿈에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 허기가 스멀스멀 피어났다. 마침 대학교 3학년까지가 예정되어 있던 모든 일이 마무리되는 시기였으므로 휴학을 결정했다. 망설이지 않았고, 20대가 된 후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곧 다시 알바를 구했다. 이번에는 돈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자취를 하지도 않았고, 주말에 하던 알바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습관은 욕심을 앞질렀다. 내내 일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아무것도 할 일이 없게 되자 초조해졌다. 게다가 매일 쉬지 않고 돈을 벌던 수준에 맞춰진 몸이 그에 3분의 1 수준의 돈으로 곧장 생활할 수는 없었다. 처음이야 적응하기 힘들었겠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될 일이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나는 그 노력을 돈을 버는 데 썼다. 틈틈이 꿈을 이루기 위한다며 무엇이든 안 해본 건 아니었지만 그것보다 알바를 더 열심히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때 당시 알바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발주 관리가 늦은 사장님의 일처리가 마음에 안 들어 '날 매니저로 삼아주면 내가 다 알아서 할 수 있는데'라며 남몰래 야심을 품곤 했다.


휴학계를 냈던 2년 동안 또 내내 알바를 했고, 휴학이 끝나고 복학 후 졸업까지 1년 간 대학교로 돌아갔을 때도 또한 돈을 벌었다.


나는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않아.

대학 등록금도 내가 벌어 내야 해.

돈을 버느라 시간 없다는 나를 기다려주는 친구들도 만나야 하고,

본가에서 학교가 멀어 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려면 자취도 해야 해.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야 많았다. 이것이 돈을 벌어야'만' 했던 이유였냐고 묻는다면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답한다. 돈이 있어야 살 수 있고, 돈이 없으면 굶어 죽는 줄로만 알았다. 나는 굶기는 싫었다.


그랬기 때문에 아무런 계획도, 준비도 없이 덜컥 퇴직을 해버린 직후, 나는 곧장 단시간에 기술을 배워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도배나 인테리어 필름 시장에 뛰어들겠다며 각종 수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간 꾸었던 꿈도, 꿈을 위해 살았던 삶도 모두 포기할 거라면 돈이라도 왕창 많이 벌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인생을 아무리 돌아봐도 나는 꿈을 위해 노력한 시간이나 가시적인 성과보다는, 각종 알바를 전전하며 터득한 사람을 다루는 스킬과 무엇이든 시키면 해내는 근성이 남아있었다. 나는 그토록 꿈꾸던 창작이 아니라 원초적인 노동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 됐다는 결론에 다달았다.


슬펐다. 하지만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 본가를 떠나 첫 직장이라며 회사 근처에 잡은 자취방 월세부터 당장 내야 했고,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공과금들도 많았다. 그 많은 돈을 감당하기에 퇴직할 때 받은 남은 월급은 택도 없었고, 나는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가난은 내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이것은 다른 차원의 가난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무섭게 했다. 부모의 가난에 영향을 받아 용돈을 잘 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친구들과 다른 수준의 삶을 살아가는, 그런 단순한 가난이자 부모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여지가 그전까지는 있었다. 그러나 그때, 홀로 남겨져 갈 곳 없이 눈을 뜬 퇴직 후에 맞이한 아침은 온전한 나만의 가난이었다. 내가 나를 외롭게 한, 이 배고픔도, 이 자괴감도 모두 나를 향하기만 할 뿐인 내가 만든 가난이었다.


돌아갈 곳이 없는 이에게 가난은 아주 무서운 전염병과 같았다. 어디도 갈 수 없고,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속으로 삭여야 하고,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엔 가난에게 집어삼켜 죽는 결말뿐이 남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퇴직을 해놓고 막상 그 누구에게도 퇴직했다고 털어놓지 못할 때였다. 이미 마음속에서는 도배와 인테리어 필름 중 필름을 선택해야겠다고, 충청도에 있는 학원 수업도 신청해놓은 상태였다. 머릿속에는 온통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자취방부터 충청도 학원까지 어떻게 다닐지를 고민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때 퇴직을 처음 털어놓은 친구가 말했다. 그때마저도 일단 질러놓은 퇴직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나 자신의 상황이 무섭고도 창피해서 "회사 그만두려고."라고 반쯤 거짓말을 했더랬다.


내 말을 들은 친구는 오히려 잘 됐다며 반색을 표하며 말했다.


"본가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보자."


퇴직하면 당장 막노동을 시작할 거라는 내 말에도 친구는 말했다.


"막노동은 40대가 돼도, 50대가 돼도, 하물며 70대가 넘어도 할 수 있어. 그런 일을 지금 나이에 곧장 결정하는 것도 좋지. 하지만 지금 우리 나이는 다른 일을 생각해볼 여유가 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


뒤통수가 부서지도록 한 방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선택지였다. 1년 계약한 월세집을 버리는 선택지를 생각해보지 않아서 월세를 충당하기 위해 당장 돈이 필요하니 당장 돈을 벌어야겠다고만 생각했다.


'그런 일'이라고 표현된 수많은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는 게 아니다. 단지 '젊음'이란 강점은 언제든, 무엇을 하든 '늦지 않았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단지 나는 지금 첫 번째 취업에서 첫 번째 퇴직을 했을 뿐이라고. '첫'이라는 말의 특별함에 속아 인생 전체로부터 도망치기엔 이르고, 새로운 길을 찾아보기에 늦지 않아. 게다가 '젊음'이란 나 스스로가 젊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 바로 '젊음'이라는 것.


가난은 내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아니, 나는 가난에 파묻혀 여유롭게 생각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을까?


매번 돈에 쫓기듯이 살았던 삶을 또다시 반복할 수 없었기에 나는 자취방을 정리하고 본가로 돌아갔다. 충청도의 필름 학원도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시간에, 처음부터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찾거나, 부자가 되길 꿈꾸지도 않았다.


괜찮아. 다시 처음부터.


늦었다고 생각된다면 이왕 늦은 거 천천히, 여유를 즐기자고. 늦지 않았다고 생각된다면 기쁜 마음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자고.


그렇게 인생 2회차에 도전했다.


그만둔다. 맞지 않은 회사도, 가난에 떠밀려 나를 벼랑 끝에 내모는 일도, 꿈을 꾸기만 하다 놓친 지금까지의 과거도.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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