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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헬륨 풍선 같아요."

열정이 버거울 때 그리고 식어갈 때

by 은옥

신규사업팀으로 입사했던 회사에서 만난 말이다.


나는 업계에서 단단한 시장을 형성하고 1위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그 회사가 신규사업을 계획하며 인원을 충원할 때 입사하게 되었다. 기존 사업이 바람만 불어도 쉽게 돌아가는 바람개비 마냥 잘 돌아간다면 새로운 사업의 시작은 그야말로 거대한 바위를 산 정상으로 올려야 하는 노고가 들어간다.

그런 노고를 일전에 겪은 사장님이 새로이 충원된 사원들과 첫 만남을 갖은 자리였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열정이 있어야 해요. 열정이 있어야 그 사업을 유지할 수 있지요. 하지만 그 열정을 유지하는 것 또한 어렵습니다.

열정을 붙들고 있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그렇다고 놔버리면 순식간에 날아가버리죠.

마치 헬륨 풍선 같아요. 놓치면 끝이에요.

날아간 다음에는 붙잡고 있는 것보다 다시 잡는 것이 더 힘들죠."


그전에 열정이라는 것을 나는 뜨거운 불로 보았다. 불을 꺼트리면 안 되니 계속해서 태우는 것이다.

계속해서 불쏘시개를 부지런히 찾아 태우다 보면 그 앞에 마주하던 나까지 데이고 지치게 된다. 따뜻하고 안락함을 위해서였으나 나중에는 나까지 태울 기세로 덤벼드니 그 앞에서는 뜨겁고 힘에 부쳐 도망가거나 꺼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열정에 대한 저 익살스러운 비유가 나를 그 회사에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게하는 원천이 되었다.

신규사업이라 제품을 유통할 때도 무시와 거절이 밥 먹듯 되풀이되었다. 시작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프로젝트마다 실행착오를 연이어 겪기도 하고 직원들 간에 불협화음도 녹록지 않은 스트레스였다. 최소의 인력과 최소의 금전적인 투자로 강한 파워를 내야 했기에 6시 정시퇴근은 조퇴하는 시간이나 마찬가지였으며 대중교통이 끊기기 전에 퇴근하면 다행인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첫발이 그야말로 가시덤불을 건너야 하는 수고가 따랐다.


아마 헬륨 풍선 얘기를 듣기 전이라면 열두 번도 그만뒀을 것이다.


그런데 불이였던 열정이 풍선이 되는 순간 나에게 가벼운 놀잇감이 된 것이다.

굳이 열정을 뜨겁게 여길 필요가 없었다.

지치고 더운 것일 필요가 없었다.

불이 커지고 줄고의 조바심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뜨거워서 오래 갖고 있지 못했다는 핑계나 자책이 따를 필요가 없었다.


그냥 놀이가 되었다. 놀이공원에서 탐스러운 풍선 하나 손에 쥔 것이다.

내가 놓으면 날아가니 날아가지 않도록 오래 갖고만 있어도 볼 때마다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엔 헬륨 풍선이 아이들 손에서 쉽게 날아가지 않도록 손잡이가 달려있지만 예전에는 작은 돌 하나 달아주었다. 풍선을 갖고 놀다가도 다른 놀잇감이 눈에 들어오면 내 풍선을 거기에 달아 같이 갖고 놀기도 하고 풍선만 바라보기 지겨울 땐 달려있던 작은 돌멩이만큼의 무게에 의지해두고 다른 놀이를 기웃거리다 다시 들면 된다.


그러면 내 풍선은 다시 손에 쥐었냐며 파란 하늘에서 동실동실 춤을 춘다.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몸이 바쁘고 피곤해지기 쉬운데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신기하게도 활력 또한 쉽게 생겼다.


나는 지금 다른 색의 풍선을 손에 쥐고 있다. 이건 또 이 풍선의 색깔대로 예쁘다. 코로나 때문에 풍선을 마음껏 갖고 놀지는 못한다. 그래도 풍선이 내게 있으니 좁으면 좁은대로 넓으면 넓은대로 풍선을 즐길 수 있다. 그마저도 안될 땐 내게 풍선이 있다는 것 자체가 좋다. 아이 마음처럼....


모든 사람들에게도 풍선이 있다. 갖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저 마음으로 원하는 색을 훅~불면 되니까.

다들 갖고 있는 풍선이 예쁘다.




OO회사 사장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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