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빨대가 녹고 있었다.
종이는 다시 펄프가 되고, 펄프는 나무였던 시절을 기억해 낸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잊고 살았던 희미한 냄새가 올라왔다.
나무. 진짜 나무 냄새.
스타벅스에 앉아 있는 동안, 내 몸의 형체가 슬금슬금 변하는 기분이 들었다.
작은 생물들이 나무에서 수액을 빨아먹듯, 나도 컵 속에서 무언가를 길어 올리고 있었다.
입에 문 빨대는 머무는 동안 계속 변했다.
가장자리는 부드러워지고, 액체 때문에 따스해졌다. 젖은 종이가 결을 바꾸는 모습은 흡사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건 단순한 물건이라기보다, 내 몸에서 뻗어 나온 입처럼 느껴졌다.
곤충들이 나무껍질에 입을 박을 때 이런 기분일까.
입가가 느슨해지고, 표면은 이완되며, 속은 나무의 결에 맞게 늘어난다.
느릿한 진입. 고요한 끌어올림.
나도 모르게 그 움직임을 따라 하고 있었다.
플라스틱 빨대는 차갑고 매끄럽다. 나무와는 아무 상관 없는 물질이다.
하지만 종이 빨대는 다르다. 커피를 한껏 머금고 천천히 나무 냄새로 돌아간다.
느슨해진 펄프 섬유들이 한때 나무였던 기억을 되살려낸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
거리에서 매장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툭 떨어진다.
이름 붙일 순 없지만 내 몸이 기억하는 어떤 변화.
나는 지금 숲으로 들어온 것이다.
조명이 휘어진다. 천장에서 벽으로, 벽에서 테이블로.
나뭇잎 사이로 걸러져 내려오는 햇살의 패턴. 그들은 그걸 완벽하게 재현해 놓았다.
벽면을 채운 나무 패널들은 마치 거대한 나무줄기들에 둘러싸인 듯한 기분을 준다.
숲속 빈터에서 느끼는 그 특유의 안정감.
의자는 아주 살짝 가라앉는다. 마치 이끼의 탄성처럼.
배경음악은 주로 재즈나 어쿠스틱이다.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
원두 가는 소리, 우유 거품 내는 소리, 컵에 부딪히는 얼음 소리. 물이 흐르고 잎사귀가 사각거리는 소리다.
도시엔 나무가 없다.
스타벅스는 그 나무들을 하나씩 복원해낸다. 인공적으로.
인간의 뇌는 수만 년 동안 숲에서 진화했다.
숲의 패턴은 우리 신경계에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다.
스타벅스는 정확히 그 구조를 띠고 있다.
완전히 열려 있지도, 완전히 닫혀 있지도 않은 적당한 은신처의 감각.
사람들이 노트북을 펼치고 그곳에 앉아 있는 이유.
나무 그늘 아래서 도구를 손질하고 생각을 정리하던 그 시간의 기억 때문이다.
커피는 그 숲의 수액이다.
종이 빨대는 곤충의 혀다.
우리는 숲을 빨아먹으러 그곳에 간다.
한 모금 들이켤 때마다 나무의 시간이 입안으로 들어온다.
스타벅스는 도시인을 위한 인공 수액 공급소다.
우리는 매일 아침 그곳에서 잠시 나무로 돌아간다.
아주 잠깐, 고작 15분일지라도.
그러고는 다시 콘크리트 세상으로 나간다.
입가에 남은 종이 빨대의 질감을 기억하며.
우리가 애써 없는 척 부정해왔던
그 숲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