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읽었는데 왜 아직도 남아 있는가 - 무라카미 하루키

by 박은호

소설을 다 읽었다. 책을 덮었다. 그런데 뭔가 나가지 않는다.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는다. 사건도 흐릿하다. 그런데 특정 장면의 냄새가, 새벽 세 시의 공기가, 누군가 떠난 뒤의 방 온도 같은 것이 몸 어딘가에 앉아서 며칠째 나가지 않는다. 이것은 감동이 아니다. 감동은 심장을 치고 사라진다. 이건 다르다.

하루키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 감각을 안다.


재즈바 사장이 소설가가 된 날

1978년 4월, 무라카미 하루키는 진구구장에서 야구를 보고 있었다. 타자가 2루타를 쳤다. 그 순간 그는 갑자기 소설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논리가 없다. 설명도 없다. 그냥 그 순간 알았다고.

그는 당시 도쿄에서 재즈바를 운영하고 있었다. 낮에는 커피를 내리고, 밤에는 술을 팔았다. 손님들이 왔다가 갔다. 재즈가 흘렀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

재즈바는 감정을 처리하는 곳이 아니다. 감정이 떠다니는 곳이다.

손님은 실연을 말하지 않는다. 그냥 앉아서 술을 마신다. 재즈가 그 감정을 건드린다. 감정은 해결되지 않은 채 공기 중에 머문다. 하루키는 십 년 가까이 그 공기를 마셨다. 그리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 방식 그대로 썼다. 감정을 해결하지 않고 공중에 매달아 두는 것.

그것이 하루키 소설의 기원이다.


대부분의 작가는 감정을 처리한다

사랑하면 고백하거나 포기한다. 죽음이 오면 슬퍼하거나 분노한다. 감정이 들어오고, 소화되고, 끝난다. 독자는 그 소화 과정을 따라가며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깔끔하다. 그리고 잊힌다.

하루키는 처리하지 않는다. 그는 감정이 처리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나오코가 죽는다. 와타나베는 전화를 받는다. 장이 끝난다. 슬픔은 설명되지 않는다. 그 감정은 공중에 매달린 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와타나베는 밥을 먹고 음악을 듣는다. 그 일상 아래 해결되지 않은 것이 낮은 주파수로 계속 흐른다.

1Q84도 마찬가지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끝내 만난다. 그런데 독자는 안도하지 못한다. 뭔가 아직 떠있다. 그 떠있음이 책을 덮은 뒤에도 따라온다.

해변의 카프카에서 열다섯 살 소년은 도망친다. 끝에서 돌아온다. 그런데 왜 도망쳤는지, 왜 돌아왔는지 끝내 명확해지지 않는다. 태엽 감는 새에서 주인공은 아내를 찾아 헤맨다. 우물 속으로 내려간다. 올라온다. 무언가가 바뀌었다. 무엇이 바뀌었는지는 쓰여있지 않다.

하루키의 결말은 닫히지 않는다. 그는 문을 열어둔 채 자리를 뜬다.

매달린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독자 쪽으로 흘러든다.


이것이 하루키가 설계하는 것이다

감정이 아니라 유예. 결론이 아니라 잔향.

이 잔향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Echo다.

종소리가 끝났는데도 공기가 아직 떨리는 상태. 하루키가 공중에 매달아 둔 감정이 독자의 내부로 스며들면, 거기서 잠들어 있던 것들을 건드린다.

인간의 내부에는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쌓여있다. 말하지 못한 것, 끝내지 못한 것, 떠나보낸 것.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잠든다. 그리고 외부에서 비슷한 주파수가 들어오면 깨어난다. 하루키의 유예된 감정이 그 주파수다. 독자 안에서 잠든 것을 깨우는 신호.

하루키의 감정이 전달되는 게 아니다. 당신 안에 이미 있던 것이 깨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장면에서 누군가는 첫사랑이 떠오르고, 누군가는 죽은 친구가 보이고, 누군가는 자신이 떠난 도시의 골목이 생각난다. 하루키가 쓴 게 다른 게 아니다. 독자가 다른 것이다.

이것이 하루키가 전 세계에서 읽히는 이유다. 그의 소설은 일본 이야기가 아니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작동한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하루키는 줄거리를 파는 작가가 아니다. 잔향을 파는 작가다.

당신이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나서 며칠 동안 이상하게 쓸쓸했다면, 그건 소설이 슬퍼서가 아니다. 하루키가 감정을 끝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미완성이 당신 안으로 들어와 당신 것과 섞였다.

그 무언가는 지금도 어딘가에 앉아 있다.

당신이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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