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방황하는 아이에서 천재로

마이스타 365 #178

by 은파랑




#05. 아인슈타인, 방황하는 아이에서 천재로


어린 시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느리게 말을 시작한 그는 교사들에게 "별 볼 일 없는 아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학교의 틀 안에서는 방황하는 별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방황 속에서 그의 마음속에 빛나던 무언가는 천재성을 넘어 우주의 비밀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자라났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는 세상의 법칙에 의문을 던지는 아이였습니다. 흔히 알려진 일화 중 하나는 네 살 때 아버지에게서 받은 작은 나침반에서 시작됩니다. 자그마한 바늘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움직이는 모습을 본 순간, 보이지 않는 세계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질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바늘을 움직이는가?" 이 질문이 결국 그를 시간과 공간의 비밀을 밝혀내는 길로 인도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인생은 어쩌면 나침반과 같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방향을 잡아가며 방황 끝에 자신의 길을 찾아냈습니다. 학교에서 일반적 교육 체계에 맞지 않는 학생이었지만, 방황은 사고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차원의 지식을 열었습니다. 이는 어두운 밤하늘을 헤매던 별이 자신만의 길을 찾아 우주의 질서를 깨우치듯, 그의 이론은 세상에 빛을 비추었습니다.


1905년, "기적의 해"라고 불리는 해에 아인슈타인은 네 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과학계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물리학의 새 장을 여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관념을 새롭게 정의하며 인류의 세계관을 뒤흔들었습니다. 마치 세상에 깊이 뿌리내린 고정된 나무를 뽑아 새로운 숲을 심은 듯했습니다.


그의 삶은 방황에서 시작해 우주의 심연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방황이 반드시 실패나 무능의 상징이 아님을 일깨웁니다. 아인슈타인은 틀에 갇히지 않은 사고가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방황 속에서 질문을 던졌고, 질문 속에서 우주의 답을 찾아냈습니다.


우리가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 떠올리는 것은 천재 과학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용기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그의 삶은 우리 모두가 때론 방황할 수 있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나침반을 찾는다면 어떤 이론도, 어떤 꿈도 실현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법칙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방황 자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여정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 존재였습니다. 그의 삶은 별빛처럼 멀고도 가까이, 마음속에서 여전히 빛납니다.




#06. 음악 속에서 찾은 평화, 존 레넌


시간의 파도 위로 한 남자의 노래가 떠다닌다. 전쟁과 분열로 얼룩진 시대에 그는 기타를 손에 들고 조용히 속삭였다.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그의 목소리는 바람이 되어 국경을 넘어 퍼졌고. 그의 멜로디는 사람들의 영혼에 평화의 씨앗을 심었다.


존 레넌

는 시대를 노래한 시인이었고 세상을 바꾸려 했던 몽상가였다.


뉴욕, 1971년 겨울

차가운 공기가 도로 위를 스쳐 지나가고 어둑한 스튜디오 한편에서 피아노 건반 위로 손이 얹혔다.

레넌은 눈을 감았다.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가사는 부드럽게 흐르면서도 시대의 긴장 속에서 단단한 파동을 일으켰다. 미국은 베트남전의 불길 속에 있었고 젊은이들은 전쟁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총성이 울렸고 누군가는 죽어갔다. 레논은 노래로 전쟁을 멈추고 싶었다. 그는 화려한 수사를 거부했고 단순한 언어로 평화를 노래했다.


“세상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요코 오노와 함께 뉴욕의 호텔방에 앉아 고민했다. 그리고 둘은 침대에서 '베드-인(Bed-In)' 시위를 벌였다.

"전쟁이 아니라 사랑을 만들자. 침대에서 평화를 논하자."

이상한 일이었다. 전쟁이 총과 칼로 이루어진다면 평화는 왜 음악과 침묵으로 이루어질 수 없을까?


그가 기타를 잡을 때마다,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레넌의 삶을 관통하는 감정은 ‘결핍’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부모의 이혼으로 혼란 속에서 자랐다. 어머니 줄리아는 그에게 음악을 가르쳐 주었지만, 그녀는 그가 열일곱 살 되던 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핍은 사랑을 갈구하게 만든다. 하지만 성숙한 사랑은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창조적 행위다."


레논의 평화 운동은 사랑을 찾으려는 그의 내면적 갈망이었다. 그는 세상이 평화롭지 않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다. 그것은 개인적 치유의 과정이기도 했다.


그가 평화를 노래한 이유는 자신이 가장 평화를 원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셰프는 『올해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존은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분노한 사람이었다. 그의 노래는 고통 속에서 태어났다."


실제로 그는 폭력적이고 거칠었던 시절도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을 통해 변했고 사랑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모두 평화를 원하지만 평화는 우리 자신 안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의 목소리는 전쟁터에서 울리던 총소리를 덮었다.

그의 가사는 젊은이들의 가슴속에 새로운 불씨를 심었다.

음악은 그에게,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레논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기타는 한동안 침묵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노래들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연주되고 있다.


비틀스의 노래가 흐르는 거리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꿈을 꾼다.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그는 노래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노래 속에서 여전히 평화를 꿈꾼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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