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치고, 하늘은 여전히 젖은 채 흐릿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 습한 공기가 나른함을 더하는 오후였다. 그러던 순간, 어디선가 눈에 들어온 빛의 조각.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 멀리 무지개가 떠 있었다.
무지개는 갑작스레 등장한 기적처럼 느껴졌다. 햇살과 빗방울이 손을 맞잡고 빚어낸 그 빛의 아치는 한순간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빨강에서 보라까지 이어진 선명한 색들은 자연 현상이 아니라, 어쩌면 세상이 내게 전하는 조용한 위로처럼 다가왔다.
무지개는 하늘 위에 걸린 색의 띠가 아니었다. 그것은 비가 내리던 어두운 시간과 햇살이 비치던 찬란한 순간 사이를 잇는 다리 같았다. '어려운 시간도 결국 지나가고, 다시 빛이 올 것이다.' 무지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침묵 속에서 세상이 속삭이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길을 걷던 사람들도 무지개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어떤 이는 사진을 찍었고, 어떤 이는 고요히 바라보았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곳을 함께 바라보는 그 순간, 우리는 연결된 기분이었다. 무지개는 풍경이 아니라,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깨우는 존재였다.
시간이 흐르자 무지개는 점점 희미해졌다. 햇살은 더 강해지고, 색들은 서서히 하늘 속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무지개의 잔상은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우연히 보게 된 그날의 무지개는 뜻하지 않은 기쁨을 주었고, 다시금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게 해 주었다.
무지개는 결국 사라졌지만, 그날 알았다. 무지개는 우리에게 예고 없이 찾아오고, 그 순간을 만나는 건 순전히 행운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하다는 것을.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