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서점 문을 열면 풍기는 오래된 종이 냄새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문턱 같다. 바람에 닳고 손길에 지쳐갈 책들이 가지런히 서 있는 모습은 소박하면서도 경이롭다. 손끝으로 책 등을 스치며 걷다 보면, 그중 하나가 나를 부른다. 이끌리듯 꺼낸 책은 세월에 찌든 표지와 누렇게 바랜 페이지를 지니고 있다. 그 책은 이미 많은 이야기의 주인이었을 테지만, 이제는 나의 것이 된다.
표지를 넘기면 이름 모를 누군가가 적은 메모가 보인다.
“잊지 말자. 우리는 결국 꿈을 좇는 나그네일 뿐.”
휘갈겨 쓴 글씨가 마음을 울린다. 누군가의 속삭임 같고, 또 하나의 이야기를 더한 흔적이다. 페이지에 담긴 문장은 삶의 한 조각을 훔쳐보는 듯하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책장 사이로 쌓인 시간의 먼지가 흩날린다. 먼지는 오래된 기억을 부드럽게 깨우며, 책의 얘기를 내 것으로 채색해 준다. 이 책을 통해 살아 숨 쉬는 세계는 잊힌 꿈들과 비밀스러운 대화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책은 처음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몇 번의 주인을 거쳐 내 손에 닿은 책은, 낡았지만 아름다운 하나의 여정이다. 종이와 잉크로 이루어진 물질적인 것 너머에, 책은 시간과 삶과 마음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중고 서점의 한구석에서 발견한 책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잊고 있던 자신을 찾았고, 오래된 문장 속에서 새로운 영감을 발견했다. 책장 사이에 숨어 있던 낡은 글자가 오늘의 나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그날, 알았다. 중고 서점은 책이 쌓인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 교차하고 이야기가 쉼 없이 흐르는 성소라는 것을. 그리고 그곳에서의 만남은 한 권의 책 너머로 나를 이어주는 작은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