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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에 놓인 밥 한 공기. 그 위로 새하얀 김이 피어오른다. 우리는 작은 찰나를 지나쳐버린다. 밥을 입에 넣고 씹는 동안에도, 마음은 이미 다음 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천천히 먹는다는 것은 그 순간을 되찾는 일이다.
숟가락을 손에 들고, 밥알 하나하나가 혀끝에 닿는 감각을 느껴본다. 쌀알의 부드러움, 씹을수록 은은히 퍼지는 고소함. 한 편의 시를 음미하듯, 밥 한 숟가락이 내게 속삭이는 얘기를 듣는다. 그 속에는 햇빛을 받으며 자라난 쌀의 생애와 농부의 손길이 녹아 있다.
천천히 먹는 것은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과 같다. 우리는 급하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잠시 멈춰, 입안에 머무는 작은 우주를 탐험한다. 밥 한 알에 깃든 온기가 몸에 스며들 때, 그것은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다.
급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삶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을 더 따뜻하게 품어준다고 밥은 조용히 가르친다. 천천히 먹는 밥 한 그릇은 하루의 무게를 덜어내는 의식이 되고, 무심코 스쳐 지나갔던 순간들을 깊게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오늘은 천천히 밥을 먹는다. 숟가락 위에서 춤추는 햇살, 씹을수록 깊어지는 풍미, 그리고 나를 감싸는 고요한 여유. 삶이란, 어쩌면 이렇게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