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시간의 결을 만지는 일

하루를 견디는 문장들 #102

by 은파랑




기다림, 시간의 결을 만지는 일


비가 내린다.

창밖으로 가로등 불빛이 번진다. 작은 물방울들이 창을 타고 흘러내린다. 흩어진 빗줄기처럼 수많은 순간들이 흐르지만, 나는 여전히 이곳에 있다.

기다리고 있다.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은 말했다.

"기다림은 불확실성 속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연습이다."


기다림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확실함을 견디는 일, 끝을 알 수 없는 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어떤 연구에서 사람들에게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게 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초조함이 커졌고, 결국 많은 이들은 친구가 오지 않을 것이라 믿고 떠났다. 하지만 일부는 남아 있었다.


"그 사람은 올 거야."


그들은 그저 기다린 것이 아니다. 믿음을 품고 기다린 것이다.


어느 책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기다림의 시간은 의미가 없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기다린다. 계절이 바뀌기를, 상처가 아물기를, 마음이 닿기를 기다린다. 기다림은 삶을 통과하는 방식이며, 시간의 결을 손끝으로 느끼는 과정이다.


어린 시절, 마당 한편에 심어둔 씨앗을 매일 들여다봤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흙바닥을 보며 의심도 했고, 조바심도 났다. 하지만 어느 날, 작은 떡잎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때 깨달았다.

기다림이란,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무언가 자라고 있음을 믿는 것.


오래전, 한 노인이 말했다.

"젊은 날에는 기다림이 고통이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기다림 속에서 삶을 배웠지."


그는 창가에 앉아 가만히 차를 마셨다. 그에게 기다림은 시간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감싸는 온기였다.


기다림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다.

기다릴 수 있다는 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아무도 모르게 자라고 있을 무언가를, 조용한 순간 속에서.


은파랑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슬픔, 마음에 흐르는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