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스타 365 #132
잔잔한 바다 위에 길을 낸 선율처럼,
그의 이름은 ‘가능성’에서 ‘현실’로 건너가는 다리가 됐다.
바람에 실려 온 운명을 붙들고,
역사의 중심에 서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써 내려간 한 청년.
알렉산더 해밀턴.
가난 속에서 피어난 지적 열망은
어둠을 밝히는 작은 횃불이 되어
그가 서 있을 무대를 끝내 찾아냈다.
먼 이국의 섬, 네비스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늘 그에게 속삭였다.
“너의 마음속에 담긴 꿈은 작은 섬에 갇히지 않을 것이다.”
해밀턴은 어렴풋이 깨달았다.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그리고 세상이 자신을 알게 만들기 위해서는 ‘글’을 통해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폭풍우 같은 그곳의 기후처럼 어린 시절 역시 고단했지만, 흩날리는 책장 사이사이로 희망이 스며들었다. 학교에 다닐 수 없던 시기에, 상점에서 계산과 업무 기록을 하면서 수많은 문서를 접했다. 주경야독하듯, 일과 사이사이에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서인도제도를 벗어나 뉴욕 땅을 밟았을 때, 해밀턴은 ‘책 속에서 본 세상’을 가슴속에 담고 있었다. 밤낮없이 도서관과 친구가 된 그의 사유는 점차 맹렬해졌다. 그리고 한 가난한 소년의 꿈은, 미국 독립전쟁의 격전지에서 대담한 전략가로 깨어나고, 새로운 정부의 건설 과정에서 유려한 필치로 제도와 사상을 설계하는 결정적 밑바탕이 되었다.
심리학에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어려운 상황에서 개인을 일으켜 세우는 핵심 동력이라고 말한다. 해밀턴은 어릴 적부터 가난과 가족사의 상실을 겪었음에도, 지적 호기심과 꿈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그를 붙들었다. 이는 ‘성장 사고방식(Growth Mindset)’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실패와 불우함을 영원한 좌절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다.
그가 책 속에서 발견한 무수한 지식들은 스스로를 재건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정신적 나침반이 되었다. 이런 내적 힘이 군사 현장에서, 그리고 헌법 제정과 경제정책 설계의 자리에서 빛나게 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페더럴리스트 페이퍼(The Federalist Papers)』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위대한 목표를 향한 위험한 열망이 인민의 권리에 대한 겉치레의 열심 뒤에 잠복하곤 한다.”
이 문장은 정부 구조나 헌법에 관한 논의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진정한 자유와 제도가 자칫 허울뿐인 구호로 전락하지 않도록, 시민 개개인의 비판적 사고와 통찰이 필요함을 강조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지식과 정보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다고 역설했다.
해밀턴의 삶은 거친 돌들을 조각하여 웅장한 동상을 만드는 과정과도 같았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었으나, 그는 날 선 끌 대신 ‘책’이라는 도구로 자신을 예리하게 연마했다. 불확실한 미래는 아침 이슬처럼 스러질 수도 있었지만, 불안을 오히려 눈부신 햇살로 승화시켰다.
독서라는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무한한 지식의 숲을 헤매며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냈다. 높은 지적 언덕을 오를 때마다 세상의 지평은 더 넓어져, 마침내 스스로가 헤아리는 생각의 지도가 신대륙처럼 펼쳐졌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만의 책을 써 내려가는 작가인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장벽은 원고지 위에 찍힌 문장부호처럼, 때론 얘기를 잠시 멈추게 하고 다시 이어 주기도 한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문장 사이사이에 힘겹게 내디딘 발자국들을 통해, 끝내 찬란한 역사 속 주연이 되었다.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도 스스로의 얘기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책 속에서 미래를 상상해 현실에 적용했다.
오늘날 각자는 어떤 책에 손을 뻗고 있을까.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해밀턴이 느꼈던 지적 해방감과 희열을 조금씩 맛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읽는 활자는 나를 새롭게 적시고, 내일을 바꾸는 작은 씨앗으로 심어진다. 해밀턴이 책 속에서 세계를 꿈꾸었듯, 우리 또한 문장 안에 깃든 가능성을 되살려, 자신만의 길을 걷는 날개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한 줄이 주는 영감은 때론 격전지의 함성보다 강렬하다. 함성을 마음속으로 가져다가, 우리가 나가야 할 새로운 세계의 지도를 완성해 가는 것. 그것이 알렉산더 해밀턴이 보여 준 ‘꿈꾸는 삶’의 방식이 아닐까.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