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캠벨, 신화 속에서 발견한 인간성

마이스타 365 #131

by 은파랑




조지프 캠벨, 신화 속에서 발견한 인간성


들판 너머 전설의 영웅들의 발자취가 속삭이듯 전해진다.

묵직한 얘기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엇을 찾아 헤매는가?”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한 학자가 나갔다.

이름 모를 별빛 아래 신화의 옛 노래에 귀 기울이며,

‘신화’라는 오래된 거울 속에서 인간의 숨겨진 얼굴을 발견한 사람, 조지프 캠벨이었다.


그에게 신화는 박물관에 걸린 고대 유물처럼 낡은 것이 아니었다. 대학 시절, 우연히 접한 동양 철학과 불교 사상에서 시작된 그의 관심은,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방대한 자료로 점차 확대됐다. 조지프 캠벨은 주말마다 도서관의 낡은 서가를 탐험하듯 누비곤 했다. 사방에 펼쳐진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신들과 영웅들의 얘기가 가득한 책들이었다.


바람이 드나드는 해 질 녘 도서관에서,

황홀한 독서에 빠져 아득히 꿈꾸곤 했다.

산맥 깊숙이 숨겨진 고대 사원을 발견한 탐험가처럼,

캠벨은 마음속에 신화의 지도를 하나씩 그려 나갔다.

지도 위에 적힌 영웅, 악마, 신들의 모험담은 ‘인간의 근원적 욕망과 고뇌’로 향하는 길을 비추고 있었다.


심리학에서는 개인의 성장 과정에서 서사가 큰 의미를 갖는다고 얘기한다. 특히 ‘내러티브 심리학(Narrative Psychology)’은 개인이 자신의 얘기를 어떻게 구성하는지가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본다.

캠벨이 제시한 ‘영웅의 여정(Hero’s Journey)’ 개념은 이와 맞닿아 있다.

일상 속에서 부름을 받은 주인공은 시련과 극복 과정을 거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이전의 그가 아니다.

이는 자아실현과 통합을 향해 가는 상징적 여정이며,

캠벨은 신화를 통해 인류가 공유해 온 ‘마음의 지형도’를 밝히려 했다.

결국, 우리가 심연 속에서 맞닥뜨리는 두려움과 욕망을 직면함으로써, 더 높은 차원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조지프 캠벨은 대표작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에서 말한다.


“영웅이 마법적인 변화를 통해 얻는 보물은, 궁극적으로 공동체 모두가 나아갈 길을 밝혀 주는 열쇠가 된다.”


영웅은 대담함과 지혜를 통해 얻게 된 깨달음을 자기 혼자만의 소유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깨달음을 세상과 나누는 과정을 통해, 신화가 현실의 무대에서도 진정한 가치를 갖게 된다고 역설한다.


또한 『신화의 힘(The Power of Myth)』에서 이렇게 조언한다.


“당신의 황홀경(Bliss)을 따르십시오. 그러면 문은 스스로 열릴 것입니다.”


이는 “나를 가장 충만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좇으라는 의미다. 우리가 진심으로 몰두하고,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드는 일을 향해 한 발 내딛는 순간,

우주가 길을 열어 주리라는 메시지다.


캠벨의 사유는 신화라는 바다에 비친 인간성의 반영이었다.

한 마리 거대 고래처럼, 신화는 바다 밑에 숨어 있는 ‘집단 무의식’의 깊은 골짜기를 헤엄치고 있었다.

그는 이 거대한 생명체의 흐름을 좇아,

인간의 보편적 여정과 근원적 열망을 형상화하려 했다.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영웅들은 각각 다른 이름을 지녔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인간의 심장소리에 화답하는 소우주였다.

캠벨이 펼쳐 놓은 지도 위에서는,

버려짐과 인내, 배신과 구원, 그리고 희망과 귀환이

마치 은하수처럼 이어져,

각자의 이야기를 별자리로 엮어 주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나만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요구하는 대본에 맞춰 움직이다 보니,

어느 틈에 내면의 목소리를 뒤로 접어 둔 채 익숙한 삶에 매몰되곤 한다.

그러나 조지프 캠벨은 신화가 그려 낸 수많은 여정 속에서 우리의 진짜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신화는 태곳적 삶의 지혜와, 인간 내면 깊은 곳을 파고드는 공포와 욕망을 동시에 품고 있다.

신화 속에 깃든 영웅들의 모험담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혹시 내가 외면하고 있던 결핍과 바람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혼자만 겪는 상처’라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인간 누구나 안고 있는 보편적 갈망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혼자가 아님을 느낀다.


그리고 비로소, 우리의 길은 이어진다.

자신의 황홀경이 무엇인지 알 때, 삶은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온다.

책 한 권, 영화 한 편, 낡은 이야기 한 조각일지라도, 그 안에서 발견한 영웅의 발자국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모험을 떠나라. 그리고 다시 돌아오라.

너는 누구보다 너 자신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조지프 캠벨이 전해 준 신화의 수수께끼가

당신의 가슴 한구석을 두드릴 수 있기를,

그리고 문을 열고 저 너머의 세계로 향할 용기를 품게 되기를 바란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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