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함과 예절 이야기
한겨울 도쿄의 아침
바람은 차가웠지만 횡단보도 앞에 선 사람들은 묵묵히 신호가 바뀌길 기다린다.
누군가는 서두르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무도 먼저 발을 떼지 않는다.
그 속에서 문득, ‘정중함’이란 보이지 않는 언어가 일본을 감싸고 있음을 느꼈다.
일본의 정중함은 겉모습의 예의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조용한 배려’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보자.
혼잡한 전철 안 아침 출근길에도 사람들은 서로를 밀지 않는다.
휴대폰 통화는 삼가고 대화는 속삭임처럼 낮게 들릴 뿐이다.
공간은 마치 함께 조심스럽게 걷는 숲처럼 조용하다.
길가의 편의점에서조차
계산이 끝난 뒤 점원은 반드시 두 손으로 물건을 건넨다.
"아리가토고자이마스." (감사합니다)
한마디는 습관이 아닌 마음이다.
그 짧은 순간 속에는
‘당신을 존중합니다’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예절은 형식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불편한 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의 정중함은 ‘나’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너’를 먼저 드러내기 위한 방식이다.
차를 마시는 다도(茶道) 속에서도
손님의 손을 바라보는 주인의 눈빛에는
서비스가 아닌 마음을 다해 환대하는 정성이 담긴다.
접시 하나 찻잔 하나에도
계절과 사람을 생각하는 세심함이 배어 있다.
어느 날 교토의 오래된 여관에서 묵었을 때
늦은 밤 문틈으로 슬그머니 온수가 든 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어떤 설명도 말도 없었지만
나는 그 속에서 무언의 배려를 느꼈다.
‘지금 당신의 몸이 차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일본식 정중함의 정수였다.
정중함은 고요하다.
하지만 고요함은 깊다.
우리가 말보다 더 큰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일본은 이렇게 속삭인다.
"당신의 존재에 감사합니다."
정중한 마음은
단어보다 길고
예절보다 넓고
시간보다 오래간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