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에 담긴 풍경들
언젠가부터 여행의 기억은 풍경이 아니라 혀끝에 남은 맛으로 남기 시작했다. 푸른 바다를 건너는 비행기 안에서도 낯선 골목을 헤매던 오후에도 진정으로 그 도시 사람처럼 느끼게 해 준 것은 접시에 담긴 얘기였다. 아시아 음식은 특히 그렇다. 그곳의 햇살과 바람, 삶의 방식과 역사가 젓가락 끝에 녹아 있다. 미식이란 결국 타인의 삶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가장 친절한 방식이 아닐까
방콕의 아침은 짜릿하다. 칠흑 같은 어둠이 물러나기도 전 길모퉁이에는 이미 국수 냄비가 끓고 있다. 여행자는 눈을 비비며 작은 식탁에 앉는다. 금속 그릇 안에는 담백한 쌀국수 위로 향신료와 고수가 쏟아진다. 태국의 국수는 정해진 맛이 없다. 단맛, 매운맛, 신맛, 짠맛 네 가지 맛이 젓가락질과 함께 조율된다. 손님마다 다른 균형, 다른 취향. 그것은 태국인의 관용을 닮았다. 고수를 싫어하느냐는 질문 한마디에도 이곳의 미식 문화가 녹아 있다. 타인의 입맛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이 나라 요리의 근간이다.
교토의 음식은 조용하다. 소리를 내지 않는다. 격한 향신료도, 넘치는 육즙도 없다. 대신 계절이 있다. 흐드러진 벚꽃이 그려낸 벤토, 깊어가는 단풍빛이 담긴 유바 두부, 흰 눈처럼 소복한 고구마 만쥬. 한 끼 식사는 짧은 시집을 읽는 듯하다. 교토에서는 '먹는다'는 행위가 '감상한다'는 차원으로 승화된다. 정갈한 다다미 위, 조심스레 나무젓가락을 집으며 생각한다. 이렇게 조용한 식사는 마음속 풍경을 더 뚜렷하게 만들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하노이의 음식은 걷는다. 자전거와 오토바이 사이를 누비며 작은 의자에 앉아 허리를 숙이고 먹는다. 쌀국수 퍼(phở) 한 그릇이 새벽의 피곤을 씻어주고 반미 속 고수와 칠리소스가 오후의 더위를 날려준다. 특히 오래된 골목에서 만난 분짜는 잊을 수 없다. 바삭하게 구운 고기와 부드러운 국수 그리고 향긋한 민트 잎.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한 조화였다. 베트남의 미식은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고단한 하루를 위로하는 정직한 맛은 고향집 밥상처럼 따뜻했다.
부산의 미식은 바다에서 시작된다. 살아 있는 회 한 점은 바다의 숨결을 그대로 품고 있고 미역국의 향기에는 어머니의 손맛이 깃들어 있다. 해운대의 포장마차에서 마신 뜨끈한 어묵 국물은 여행자에게 눈물 한 방울만큼의 그리움을 안긴다. 그러나 진정한 미식은 자갈치 시장 뒤편, 허름한 가게에서 만났다. 그곳에서 먹은 곰장어구이는 석쇠 위에서 불꽃과 함께 숨 쉬었고 고소한 향은 폐허 같던 오후에 온기를 더했다. 한국의 음식은 참을성이 깊다. 오래도록 절이고 천천히 익히며 깊은 맛을 만들어간다. 어쩌면 인내가 한국의 기질인지도 모르겠다.
델리에 발을 디딘 순간 공기부터 다르다. 카레의 향, 가람마살라의 무게, 탄두리의 연기. 인도의 음식은 과감하다. 가리지 않고 혼합하고 끊임없이 변주한다. 간단한 렌즈콩 수프 한 그릇도 스무 가지 향신료로 만들어지며 전통과 종교, 신념이 접시에 담긴다. 길가에서 먹은 사모사 한 조각에도 세계의 철학이 녹아 있었다. 바삭한 껍질 안에 감자와 완두콩 그리고 인생처럼 예측할 수 없는 매운맛이 들어 있었다. 인도의 미식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떤 맛을 선택할 것이냐고
아시아의 음식은 누군가의 삶을 조금씩 떼어내어 나눠주는 일이다. 우리는 국수 한 젓가락에 그 나라의 공기와 가족과 눈물과 노동을 담아낸다. 그래서 진정한 미식 여행이란 어쩌면 타인의 삶을 조용히 존중하고 내 입을 통해 그 세계를 받아들이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맛들은 이제 내 안에서 작은 풍경이 되어 남아 있다. 풍경은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맛으로 기억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혀끝에 스친 순간들이 가장 오래 남는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