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스타 365 #115
나눔은 결코 가진 것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함께할 때 더욱 풍요로워지는 기적의 순간이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면, 그것이 내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한 사람의 작은 손길이 또 다른 손길을 비추고, 그 빛은 점점 커져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나누는 것이 결코 손해가 아님을, 우리는 종종 깨닫는다. 나누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물질을 넘어선 진정한 가치를 함께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세상은 더 넓어지고, 더 풍성해진다.
아베 피에르는 부족함 없이 성장했지만, 모든 유산을 내려놓고 수도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평생 동안 번 돈은 노숙자들을 위한 삶에 바쳐졌고, 그가 세운 ‘엠마우스’ 공동체는 빈곤한 이들을 위한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가난한 이들의 곁에서 봉사하며, 여성 해방을 위해서도 헌신했습니다. 그의 생애 자체가 참된 성직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사람들은 그를 살아 있는 성자로 칭송했습니다. '아베'는 프랑스어로 '신부'를 뜻하지만, 이제 아베 피에르는 그 의미를 넘어 박애 정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눔은 자선이 아닌,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입니다. 도움받은 이들도 언젠가 고통을 지나 또 다른 실천가가 될 것입니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부자는 줄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타인을 돕는 일에서 행복이 싹트며, 행복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 깃들어 있습니다.
프랑스의 도덕가 라 브뤼에르는 “부자의 진정한 행복은 자선에 있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미국의 투자자 워런 버핏은 2010년 자신의 재산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오래된 집에서 살며 낡은 차를 탔지만, 이웃과 사회를 위한 나눔에는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척 피니는 아일랜드 이민 노동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카드를 팔았고, 골프장 캐디로 일하며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동창들과 함께 주류 면세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를 통해 ‘듀티 프리 쇼포스(DFS)’를 세계적인 면세 체인으로 성장시켰습니다. 막대한 부를 얻은 그는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전 재산을 ‘애틀랜틱 자선재단’에 기부한다는 서류에 서명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빈손의 억만장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돈을 가지게 되었기에 기부한 것입니다.”
1997년에야 척 피니의 기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DFS를 인수한 루이뷔통 모엣 헤네시 그룹의 관계자가 회계 장부에서 거액의 기부금 기록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25년 동안 무려 40억 달러를 익명으로 기부했습니다. 아일랜드, 베트남,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쿠바 등의 대학과 병원, 인권단체가 그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피니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자동차조차 두지 않았습니다. 손목에는 만 원짜리 플라스틱 시계가, 식사할 때는 값싼 식당이 늘 그의 선택이었으며, 비행기를 탈 때도 항상 일반석을 이용했습니다. 남김없이 나누어 준 따뜻한 마음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선사했습니다.
산타클로스의 이야기는 현재 터키 지역의 소아시아 지방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성 니콜라스라는 자애로운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이웃에 사는 세 자매가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올릴 수 없다는 사정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매들이 마음 상하지 않게 돕고 싶었던 할아버지는 남몰래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로 결심합니다.
‘굴뚝 속으로 금화가 든 주머니를 슬쩍 넣어야겠군.’
그는 조심스레 지붕에 올라가 굴뚝 속으로 금 주머니를 떨어뜨렸습니다. 그 주머니는 우연히도 벽난로에 걸려 있던 양말 속으로 쏙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양말 속에 금 주머니가 들어 있대!”
양말 속 금 주머니 이야기는 온 동네에 퍼졌고, 곧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19세기에 이르러 크리스마스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니콜라스 할아버지는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그의 이름은 산타클로스로 자리 잡아,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생활 보호 대상자로 등록되어 있었고, 건강마저 허약해 오래 살기 힘들 것이라는 말도 들으며 자랐습니다. 학과 성적은 우수했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계속 실패하면서 결국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빚쟁이를 피해 가족만 남겨 둔 채 러시아로 떠나버렸고, 남겨진 아이들은 생계를 위해 길거리에서 성냥을 팔며 하루하루를 이어갔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안데르센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와 다름없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러시아에서 다시 사업을 시작하자 노벨은 아버지를 도와 화약을 만드는 일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규조토라는 흙이 니트로글리세린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를 계기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신문을 펼친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의 부고가 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상인, 노벨 사망하다.”
사람들은 그를 ‘죽음을 파는 장사꾼’으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에게 큰 충격이었고, 순간 그의 인생은 깊은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노벨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재산을 나누기 시작했고, 결국 전 재산을 인류를 위해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유언장을 작성하여 유산 3,200만 크로네를 노벨상 기금으로 남겼습니다. 그리고 물리학, 화학, 의학, 문학, 평화를 위해 이바지한 이들에게 노벨상이 수여되기를 바랐습니다. 그 후로 인류에 공헌한 수많은 사람들이 노벨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과학의 진보와 세계 평화를 위해, 스웨덴 과학 아카데미는 그가 세상을 떠난 12월 10일마다 노벨상을 수여하고 있으며, 그의 뜻은 오랜 세월을 넘어 지금도 빛나고 있습니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