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옷을 입은 자아
그는 거울 앞에 섰다.
정장을 단정히 여미고 넥타이를 고쳐 맸다.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고 미소는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얼굴은 진짜 자아가 아니었다.
그는 ‘존재하고 싶은 나’를 매일 아침 거울 속에서 만들어냈다.
리플리 증후군
이름조차 문학적이다.
이 증후군은 1955년 출간된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The Talented Mr. Ripley)>에서 유래되었다.
탐욕과 불안, 거짓된 자아가 얽혀 만들어낸 병적인 자기기만
리플리 증후군은 허세나 거짓말이 아니다.
‘나는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자각조차 서서히 무뎌지는 정체성의 침식 현상이다.
정신과에서는 이 증후군을 ‘현실 부정의 심리적 방어기제가 고착된 상태’로 본다.
자신의 과거, 능력,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기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외면한 채, "이상화된 나"를 현실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이들의 뇌는 점차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감정의 회로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점점 더 강하게 이입된다.
그들은 거짓말을 습관처럼 하지 않는다.
거짓은 그들에게 생존의 방편이며 자존감의 붕대이자 내면의 공허를 메우는 가짜 심장이다.
그래서 리플리 증후군 환자에게 ‘당신은 거짓말쟁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잔인한 폭력이다.
그 말은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리플리적 기질을 지닌 이들은 대부분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다.
아버지의 기대를 넘지 못한 어린 시절
모두가 인정받는 학교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였던 경험
사랑받기 위해 착한 아이로 연기해야 했던 수많은 나날들
그들은 그렇게 배웠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다른 자아를 입기 시작했다.
더 똑똑해 보이는 나
더 성공한 나
더 멋진 나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 옷은 몸에 달라붙어
벗고 싶어도 벗을 수 없는 껍질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의 눈빛은 가끔, 아주 가끔, 슬픔과 두려움으로 물든다.
‘나는 언제까지 거짓된 삶을 살아야 할까?’
‘누군가 나의 진짜 모습을 알아차리면 다 무너지는 건 아닐까?’
리플리 증후군을 치유하기 위해선 자신을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비록 초라하고 부족하더라도 자체로 존재의 이유가 된다는 것을
“내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의미다”는 인식을 되찾는 것
그것이야말로 ‘거짓 자아’의 옷을 벗고 진짜 나로 숨 쉬는 첫걸음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혹시
거짓의 옷을 입고 살아가고 있다면
감히 말하고 싶다.
당신은 그저 사랑받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그리고 그 진심 하나면
다시 당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충분하다고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