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
미겔 데 세르반테스. 그는 스페인이라는 태양 아래 태어났지만 삶은 그를 사막처럼 메마른 현실로 이끌었다.
전쟁터에서 팔 하나를 잃었고 포로가 되어 다섯 해를 견뎌야 했으며 감옥에도 갇혔다. 삶은 그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았고 세상은 그를 늘 오해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현실 속에서 한 사람의 환상을 지켜냈다. 낡은 말을 타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사람, 말도 안 되는 갑옷을 입고 ‘기사’를 자처하는 사람, 누가 보아도 어리석고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을 통해 그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과연, 현실만이 진실인가. 어쩌면 현실을 믿지 않기로 한 어떤 꿈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유일한 방식이 아닐까. 세르반테스는 낡은 종이에 그런 물음을 조용히 눌러 적었다.
한밤중의 감옥, 축축한 돌바닥 위에 몸을 누인 남자는 펜 대신 마음속에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세르반테스는 감옥에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상상은 자유였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정의'를 믿는 어리석은 이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곧 한 남자가 그의 마음속에서 말을 타고 나타났다. 창을 쥐고, 빈사 상태의 갑옷을 입고, 바람개비를 거인이라 부르며 돌진하는 이.
그는 돈키호테라 불렸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고 둥근 몸의 산초가 있었다. 세르반테스는 알았다. 이 두 사람은 현실과 환상의 그림자이며 둘이 엉켜 있는 삶의 진실을 보여줄 거라고.
<돈키호테>는 허황된 기사의 모험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오히려 현실이란 이름의 냉소를 견디기 위한 꿈의 연극이다.
돈키호테는 낡은 책을 너무 많이 읽은 끝에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된 남자다. 하지만 그의 세상은 냉정했고, 정의를 비웃고 이성만을 진리로 내세우는 시대였다.
그런 세상에서 그는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한다. 거인을 향해 창을 들고 달려가며 세상의 조롱을 몸으로 받아낸다. 그는 실패하고, 멍이 들고, 길 위에 쓰러진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는다.
“나는 나다. 나는 라 만차의 돈키호테다.”
그의 말은 광기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 안에는 깊은 슬픔과 고독, 그리고 세상이 잃어버린 어떤 숭고함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세상은 언제나 현실을 요구한다. 계산 가능한 삶, 논리적인 선택, 타인의 시선에 맞춰진 말과 행동. 하지만 우리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는 모든 ‘현실’을 거부하고 싶은 작은 목소리가 있다. 목소리는 묻는다. 정말 이것이 전부인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가.
<돈키호테>는 그 질문에 ‘아니요’라고 말하는 책이다. 그는 비웃음을 알면서도 기사의 꿈을 꾼다. 산초는 현실을 알면서도 그를 따라나선다. 그들의 여정은 어쩌면 실패였지만 실패 안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인간성이 있었다.
현실만으로는 인간이 살아갈 수 없다. 우리에겐 어떤 허상,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신념 그리고 비합리적인 열정이 필요하다.
꿈은 늘 현실에 부딪힌다. 하지만 충돌 안에서만 진짜 내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때때로 어리석은 행동이 가장 진실한 고백이 된다.
돈키호테는 우리 모두 안에 있다. 그가 창을 든 날, 사실은 우리 모두가 꿈을 향해 첫 발을 내디뎠던 날이었다.
낡은 말을 타고 그는 떠났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아무도 믿지 않는 마음으로
거인은 풍차였고 성은 여관이었으며
공주는 농부의 딸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았다.
그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있어야 할 모습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쓰러졌고 그래서 그는 빛났다.
현실 속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
그는 실패했고 그래서 우리는 그를 기억한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