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괴테

by 은파랑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그의 이름은 오래된 서재의 창을 열었을 때 먼지 속에서 피어나는 빛처럼 다가온다.

그는 시인이었고 철학자였으며 과학자였고 극작가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살아 있는 인간 정신의 불꽃’이었다.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인간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던 그는 내면의 음성과 우주의 진동을 동시에 듣고자 한 이였다.


그의 눈은 별을 응시했지만 시선은 늘 인간의 고뇌와 기쁨 속에 머물렀다. 괴테는 창조의 고통을 견디며 예술의 본질을 묻고 사랑과 진리와 영혼의 갈망을 언어로 빚어낸 존재였다.


젊은 괴테는 어느 날 한 작은 도시의 오래된 성당을 지나치다가 우연히 한 노인의 말을 들었다.


“인간은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고는 신에게 닿지 못하지.”


그 말은 번개처럼 괴테의 가슴에 내려앉았고 그는 그날 밤 촛불 앞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한 문장을 적었다.


“나는 이제 무엇을 아는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


그의 방 안엔 미완의 초고들이 쌓여 있었고 그는 인간의 구원과 타락, 욕망과 구도 사이에서 태어날 새로운 얘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렇게 십수 년의 시간이 흐른 뒤 <파우스트>의 첫 문장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괴테의 청춘은 그 얘기 안에 타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운명 전체였다.


<파우스트>는 인간의 지식과 욕망, 타락과 구원, 창조와 파멸을 동시에 품은 하나의 우주다.


"학문과 마법, 신과 악마, 사랑과 배신의 모든 층위가 한 인간의 이름 안에서 펼쳐진다." <파우스트> 중에서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고 결국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는다. 그의 여정은 인간의 끝없는 탐구심과 예술가의 본질을 그려낸다.


책 속 한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회색은 모든 이론이요, 푸르른 생명의 황금빛 나무는 영원히 푸르도다."

Grau, teurer Freund, ist alle Theorie,

Und grün des Lebens goldner Baum.


이 구절은 머리로 이해한 세계가 아닌 살아 있는 감각과 경험, 예술과 삶의 실천 속에 진리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파우스트>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정말로 살아본 적이 있느냐고. 도서관의 먼지 속에서가 아니라 사랑에 상처 입고 욕망에 흔들리며 신의 침묵 앞에서 눈물 흘린 적이 있느냐고.


파우스트는 인간의 그림자다. 그리고 예술가는 그림자를 언어로 빚어내는 자다.


예술은 때로 악마와 손을 잡는 일이다. 타인의 고통을 노래하고 스스로의 죄를 찬란하게 장식하는 일이다.

하지만 바로 모순 안에서 인간은 ‘창조’라는 빛을 낳는다.


괴테는 말한다.

“진리는 완성에서가 아니라 모순의 행로 속에서 태어난다.”


파우스트 얘기 속에서 우리는 ‘신의 예술’을 흉내 내려는 인간의 치열함과 안에 숨은 구원을 본다. 창조는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어둠의 틈 사이로 빛 하나 스며든다. 빛을 따라간 자, 파우스트. 그는 물었다. 무엇이 진리인가. 무엇이 영혼인가


지식의 숲, 사랑의 강, 절망의 벼랑

모든 길 끝에서 그는 외쳤다

“나는 원했다. 끝까지, 끝까지 가고 싶었다.”


그리고 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술은 침묵을 노래했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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