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잠 꿈 뇌

잠들며 우리는 자신을 다시 쓴다

by 은파랑




잠들며 우리는 자신을 다시 쓴다


하루 동안 쌓인 기억의 잔해들이 어둠 속 뉴런의 별무리에 실려, 서서히 정리된다. 잠은 쉼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이라는 풍경을 재배치하는 신경 회로의 고요한 춤이다.


해마는 낮의 경험을 부지런히 재생한다. 렘(REM) 수면 속 꿈결의 번뜩임은 감정이 실린 장면을 되새김질하며, 비렘(NREM) 수면은 중요한 것과 잊어도 되는 것을 차분히 구분해 낸다.


신경세포는 이 밤에 서로를 더 끌어안기도, 조용히 손을 놓기도 한다. 연결과 단절의 아름다운 의식이 기억 공고화의 정수다.


기억은 저장이 아니라 재해석이다.


심리학은 말한다.

"잠은 마음의 재봉틀이다."


감정의 실로 꿰매어진 기억은 더 오래, 더 선명하게 남는다. 렘수면 동안 우리는 잊으려 한 얼굴을 다시 만나고, 놓친 표정을 다시 읽는다. 감정과 정보가 엮이면서 기억은 더 촘촘히 엮인다.


트라우마는 잠을 거부한다. 반대로 깊은 잠은 상처의 가장자리부터 아물게 만든다. 잠이란 결국, 마음이 스스로를 설득하는 가장 부드러운 방식이다.


의학은 수면을 생명의 기초로 본다. 산소, 물, 음식처럼 잠도

살아있음의 조건이다. 수면 부족은 피곤함이 아니라 해마의 기능 저하, 전두엽의 통제력 약화, 면역 기능의 붕괴다.


기억은 세포의 언어로 쓰인다. 수면은 그 언어의 문법을 바로잡는다. 특히 슬로 웨이브 수면(SWS) 동안, 우리의 뇌는 낮의 활동을 '재연결'하고 중요한 정보들을 장기기억으로 옮기는 수작업을 한다.


수면은 가장 조용한 치료이자, 가장 깊은 학습의 순간이다.


움직임은 몸의 언어다. 그리고 그 언어 역시 수면을 통해 기록된다.


운동학은 말한다.

"근육의 기억, 즉 운동기억(motor memory)은

수면이 있어야 비로소 몸에 새겨진다."


드리블 하나, 피아노의 손가락 하나, 발레의 턴 동작까지.

모든 숙련은 밤에 이루어진다.


비렘 수면 동안 소뇌와 운동 피질은 반복된 움직임의 흔적을 복기하고, 다음 날의 더 나은 수행을 준비한다.


잠든 몸은 멈춘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움직임을 연습하는 무언의 도전자다.


기억은 영혼의 소산 같지만 놀랍게도, 그것은 우리가 먹는 것들로 빚어진다. 트립토판이 세로토닌이 되고, 세로토닌이 멜라토닌이 되어 잠을 부른다.


오메가-3는 시냅스를 유연하게 만들고, 비타민 B6는 신경전달물질의 합성을 돕는다. 심지어 수분 섭취조차도

뇌의 전기 신호에 영향을 미친다.


식사와 수면, 그리고 기억. 삼각형의 조화 속에 우리는 매일 조금씩 더 나은 존재로 자라난다.


수면은 인간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잊지 말아야 할 리듬이다.


플라톤은 말했다.

"잠은 영혼이 별을 향해 항해하는 시간이다"


수면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되찾는 가장 정직한 길이다. 기억은 과거의 잔상만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내면의 지도다. 인문학은 그것을 '기억의 윤리'라고 부른다.


우리는 어떤 것을 기억하고, 어떤 것을 잊는가. 선택은 결국

우리가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깊은 질문이다.


수면은 단순한 무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정리의 기술이자 치유의 시간, 그리고 정체성의 재편이다.


과학은 수면 속 뉴런의 반짝임을 관찰하고, 심리는 반짝임이 남긴 의미를 해석하며 의학은 그것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기록한다. 운동은 잠 속에서 더 정확해지고, 영양은 잠을 더 깊고 진하게 만든다. 그리고 인문학은 모든 작용 뒤에 숨은

‘존재’의 의문을 되묻는다.


밤은 멈춤이 아니라 완성이다. 우리는 잠들며 자란다. 우리는 잠들며 기억한다. 그리고, 우리는 잠들며 더 깊은 나 자신이 된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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