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견디는 문장들 #72
세상의 모든 이별은 고요 속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는 '혼자'라는 단어를 두려움으로 받아들이지만, 두 글자에는 뜻밖의 가능성과 마주할 용기의 씨앗이 들어 있다. 익숙한 것들과의 단절,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 앞에 선 첫날밤
우리는 그 밤을 낯설고 쓸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요함은, 사실 인간이 가장 깊은 자신을 만나는 순간의 문턱이기도 하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인간의 내면에는 ‘자기(Self)’라는 중심이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평소 ‘페르소나’, 즉 사회 속에서 쓰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러나 혼자라는 상황, 특히 낯선 공간에서 맞이하는 첫날밤은 가면을 벗고 자신과 마주 보게 만든다. 타인의 시선과 소음이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속삭이듯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처음으로 진짜 나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밤. 그것이 혼자의 시작이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현대 사회를 ‘아노미 상태’라 불렀다. 규범은 약화되고 사람들은 방향을 잃고 고립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립은 단절이 아니다. 자기만의 가치 기준을 세우고 삶의 균형을 다시 맞출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연결과 소속의 시대 속에서 혼자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유일하게 자신의 내면과 소통할 수 있는 고귀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타자에게서 벗어나 나만의 언어로 삶을 재구성하는 일. 그것이 낯선 고요 속에서 일어난다.
인문학에서는 오래전부터 '고독'을 철학적 성찰의 기회로 보아왔다. 몽테뉴는 혼자 있는 법을 아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성숙이라고 했다. 진정한 자유는 외부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내부에서의 자립에서 온다는 것이다. 불 꺼진 방 안 낯선 침대 위에 누워 어둠을 가만히 바라보는 순간. 외롭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머물러보자. 내면의 목소리가 천천히 밀려온다. "이곳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까?" 고요 속에 피어나는 첫 번째 질문이 이미 나를 바꾸기 시작한 증거다.
과학은 이 순간을 뇌의 시점에서 바라본다. 새로운 환경은 편도체를 자극하고 낯설고 위협적인 감정인 불안을 불러온다. 그러나 동시에 전전두엽은 환경에 적응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회로를 작동시킨다. 혼자의 시작은 그 균형 위에서 이루어진다. 두려움과 가능성, 불안과 창조성의 경계에 선 뇌는 결국 새로운 나를 만들어낸다. 고요함 속에 활성화되는 시냅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지금 이 순간은 너의 다음 진화를 위한 준비야.”
이 밤을 사랑할 수 있을까? 대답은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인간은 언제나 느린 존재였고 깊은 변화는 늘 고요 속에서 일어났다. 외부의 소음 없이 온전히 자신과 마주한 적이 있는가? 처음의 낯선 밤, 처음의 침묵은 사실 우리를 가장 깊은 곳으로 이끄는 문이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 혼자는 결핍이 아닌 충만이고 고요는 두려움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낯선 고요함 속의 첫날밤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시간이기도 하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혼자 태어나고 혼자 죽는다. 하지만 그 사이 우리는 '함께'라는 환상 속에서 종종 자신을 잃는다. 그러니 이 밤을 환대하자. 불안으로 떨리는 침묵을, 낯설어 손이 가지 않는 방의 공기를. 여기에 머물 수 있다면, 당신은 더 이상 외롭지 않다. 당신은 이제 '나'라는 세계의 문을 열었고 거기에는 처음 보는 그러나 어디선가 익숙한 얼굴이 있다. 바로 당신 자신이다.
이것이 혼자의 시작이다.
그리고 시작은 언제나 고요함 속에서 온다.
은파랑